010. 골목에 달리는 열매

by 이승준

우리 동네 골목에는 뭔가 키우는 식물들이 많다.


우리 집 감나무는 마당까지 늘어져 감이 달리고, 앞집에는 호박을, 골목 너머 집에서는 고추를 심어두었다. 그냥 지나다니다가 손이 닿으면 따먹는다. 그래도 되나? 하다가도 가을 되면 우리 집 감도 동네 사람들의 간식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그냥 그렇구나, 할 뿐이다.


앞집 호박이 꽤 탐스럽게 익었다. 엄마는 잘 익은 호박들을 옆에 있는 호박잎 사이에 잘 숨겨 놓는다. 익을 때까지 다른 사람 눈에 띄지 말고 잘 있으라는 거다. 가끔 점찍어둔 호박을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길 때도 있지만 꿋꿋하게 은밀한 호박 묻기 작업을 실행하고 계신다.


어딘가에 골목에는 도라지를 잔뜩 심어두었다. 지난여름, 나는 길을 가다 말고 쪼그려 앉아서 도라지 꽃을 손으로 터트리며 놀았다. 충분히 부풀어 오른 도라지 꽃을 손으로 툭 누르면 폭 하고 터지는 재미가 참 좋다. 그렇게 열심히 터트리다 보면 누군가 벌써 터트려놓은 도라지꽃이 발견되기도 한다. 선수를 빼앗겼다,라고 생각하면서 애꿎은 도라지꽃만 만지작 만지작 거린다. 이건 숨기기 어렵겠지, 하고 아쉬워한다.


열매들이 익어가는 가을이 되면 여기저기 초록빛뿐이었던 골목에 여러 색깔이 돈다. 요즘이 딱 그런 시기이다. 잘 익은 고추가 빨갛게 익고 감이 점점 주황색을 띠고 호박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바닥에 흔들리며 떨어지는 나뭇잎의 색도 저마다 단풍으로 물드는 중이다.


가을이 골목 골목에 물든다.

동네 사람들의 열매 따기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09. 아침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