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저 아래에는 거지가 살았었다.

by 이승준

서울에 있을 때 놀러 온 친구가 나에게 가장 충격적이라고 말했던 것은 노숙자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충주에서는 시내에서 노숙자를 보기 어려우니까. 서울역이나 을지로 쪽을 봤으면 충격받을만하다. 나는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물어본다. 충주에도 다리 밑에 살던 거지 있지 않았냐고.


아주 어릴 때, 아버지 차를 타고 시내를 지나다 보면 어느 다리 밑에 거적 하나가 깔려있었다. 그 거적 밑으로 보이는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 발바닥 두 개와 가지런히 놓인 낡은 구두 한 켤레가 그렇게 인상에 깊이 남아있다. 아버지는 그 근처를 지날 때면 슬쩍 보시고 차를 세워놓고는 만 원짜리 한 장을 그 구두 밑에 두고 가셨다.


왜 하필 만 원이냐고 물어보면 아버지는 그래야 자장면 한 그릇, 소주 한 병, 담배 한 갑 정도 살 수 있다고 하셨다. 배가 많이 고픈 날에는 주섬주섬 일어나 바로 돈을 챙기고 어디론가 가버린다고 하셨다. 돈을 놓고 가도 미동이 없을 때면, 오늘은 어디서 뭘 먹고 왔나 보네 하셨다.


그 다리가 멀찍이 보이는 길을 갈 때면 먼발치에서 그 거지를 구경했다. 날이 따뜻하면 발을 내놓고 있거나 비가 오면 물이 차도 안 젖고 비도 안 맞는 공간으로 거적을 옮겨 누웠다. 그러다 날이 추워지면 어딘가 들어가는지 거적은 보이지 않았다. 달팽이처럼 제 집은 꼭 붙어 다녀야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었다.


친구는 거지 같은 건 모른다고 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하긴 사람 다니는 길에선 멀리 떨어진 다리 밑이니까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거지인 줄도 모를 거다. 이야기가 나온 차에 문득 그 거지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내 머릿속에서도 어느 추운 날, 문득 사라져 버린 그의 다리 밑 거적처럼 자연스레 잊혀 버린 지 오래였으니까. 지금도 아버지는 그 거지에게 만 원을 주고 계실까. 담배값이 그때보다 많이 올랐는데,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뒤따랐다.


그때 이후로 지금은 20년도 넘게 흘렀다. 거지는 당연히 있을 리 없고 그 다리 밑에는 거적 대신 사람들의 산책로가 생겼다. 여기저기 물어보니 유독 춥던 어느 날 죽었다는 소문도 있고 경찰관들이 어디론가 데려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날 앞도 안 보이는 비와 함께 사라졌다는 소문도 있었고, 그냥 날이 좋던 어느 날 자신의 거적을 챙겨 구두를 신고 홀연히 떠나버렸다는 소문도 있었다.


어떤 소문이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난 시간만큼이나 희미해진 기억 사이에도 작은 동정 정도는 조금 남은 모양이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그 거지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그 거적 속에서 아직도 외로이 잠을 자고 있지는 않을지, 누군가 자장면 한 그릇, 담배 한 갑, 소주 한 병 어치의 돈 정도는 구두 밑에 놓아줄지. 하는 작고 작은.


아직도 그 길을 지날 때면 먼발치에서 그 맨발과 가지런히 놓인 낡은 구두가 보이지 않을까.

이런저런 작은 생각으로 한참 바라보다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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