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이 골목 마지막 여름꽃

by 이승준

태풍이 지나갔다.


우리 동네에도 큰 바람과 비가 함께 쓸고 지나갔다. 풀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다행이라면 다행일지 큰 피해는 없었지만 마당과 골목이 엉망이 되었다. 꼭 폭격이라도 맞은 모양새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멎은 아침, 나는 마당으로 나가 청소도구를 주섬주섬 챙겼다.


떨어진 꽃잎과 나뭇잎들, 부러진 가지들이 온 사방에 흩어져있다. 그 길 위로 아직 꽃 한 송이가 쭈글쭈글하게 매달려있다. 와, 그 바람에도 살아남았네 하고 보다가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꽃이 이 골목에 남아있는 마지막 꽃이다.


여름 끝 무렵, 계절을 잊고 힘껏 매달려있던 놈일 거다. 영문도 모른 채 맞아야 했던 비바람을 어떻게든 이겨냈다. 비록 만개했을 때의 화려함과 향기는 남아있지 않지만 아직 남아있는 색으로 자기가 꽃이었음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때 모르고 남은 분홍색이 그저 반가웠다.

가끔 생각나면 시선 줄 테니 오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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