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 그 등나무 쉼터는
내 아지트였다.

by 이승준

어릴 때 봤던 외국 영화에 나오는 나무 위의 작은 집이 부러웠다.


나 홀로 집에나 심슨에도 앞마당 나무 위에 작은 오두막이 있고, 그 안을 친구들과 아지트처럼 꾸며 사용하는 것이 정말 부러웠다. 당시 나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으니 마당이 있을 리 없었고 아파트 근처 나무에 집을 짓는 것도 가능할 리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 가서 놀던 놀이터 구석에 있는 등나무 쉼터를 발견했다.


단순하게 나무로 지어진 이 쉼터에는 등나무가 울창하게 번져있었다. 몸집이 작은 나는 그 쉼터 중에서도 구석으로 들어가 기둥에 잡을 부분을 찾아 잡고 올라가 보았다. 꼭 절벽 위를 올라가는 느낌이었지만 그게 불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나무 기둥을 붙잡고 가지를 헤쳐가며 기어올라간 곳에는 웅크리면 한 명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아늑하게 등나무 이파리가 뒤덮인 작은 공간이 있었다.


그 날부터 그곳은 내 아지트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몇 개 숨겨두기도 했고, 떡튀김을 사다가 웅크려 앉아 먹기도 했다. 학교가 끝나면 집에 가방을 가져다 놓고 뛰쳐나와 아무도 모르는 이 공간에 들어와, 백 원을 주면 사탕과 약간은 허접한 로봇 장난감을 조립할 수 있는 걸 사다가 조립하는 것이 낙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 한 명도 초대했다. 자리가 좁고 내가 앉을 수 있는 자리만 최적화되어있어서 친구는 매우 불편해했고 결국 혼자만의 공간이 되어버렸지만.


언젠가 비가 많이 오던 날. 나는 아지트 안에서 이 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빗물을 맞은 적이 있었다. 아껴두었던 백 원짜리 조립 로봇들을 비가 안 맞게 굵은 가지 밑으로 잘 줄 세워 놓고 꼼지락꼼지락 열심히 아지트의 호우대비를 해야 했다.


그런 아지트도 다른 어른들의 눈에는 그저 아이들 장난으로 보였나 보다. 어느 날 등나무 쉼터는 무성해진 가지를 쳐내기 시작했고 가지치기가 끝나 뭔가 엉성해진 쉼터에는 내 아지트의 지붕이 훤히 뚫려 사라져 버렸다. 이럴 리 없다며 올라가 보았으나 더 이상 그 공간에는 아늑함이 없었다. 그저 위험한 곳에 올라간 어린아이 하나가 보일 뿐이었다. 허접했던 내 장난감들도 어디 간지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그 등나무 쉼터의 아지트를 찾아보니 손 뻗으면 닿는 높이이다. 이게 그렇게 올라가기 어려웠나 싶다. 올라가 볼까, 하고 잠시 고민해보았지만 상체라도 간신히 들어가면 다행일 정도로 좁아 보였다. 그때 앉았던 그 자리 밑으로 머리만 빼꼼히 들이밀어본다. 혹시 지금은 여길 아지트로 쓰고 있는 아이가 없을까, 백 원짜리 허접한 로봇 장난감이 줄지어 가지런히 놓여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 약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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