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의 장은 5일장이다.
동네마다 장 서는 날짜가 다르지만 우리 집이 장을 보러 가는 자유시장은 매월 5일과 0일이다. 무학시장과 거의 닿아있어 규모도 상당하다. 예전에는 지붕도 없었는데 골목 전체에 지붕을 씌우고 간판을 지원하고 해서 거대한 미로 같은 시장이 되었다.
재래시장이 마트에 비해 차별점을 가지지 못한다는 비판을 수 없이 보고 살았고, 혼자서 어떻게든 따져보아도 시나는 시장을 좋게 봐줄 수 없었다. 정찰제도 아니고 인심이 좋지도 않다. 그냥 멀뚱멀뚱 구경한다고 혼나지 않거나 길 막는다고 꾸지람 듣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먼지 풀풀 날리는 길바닥의 위생도 둘째칠 수 없다. 도로 가운데를 판매대로 만들어서 통행이 불편하게 만든 것도 싫었다.
그러던 얼마 전의 일이다. 엄마가 짐꾼이 필요하다며 나를 부르셨다. 장에 고추를 사러 가야 한다고 한다. 고추가 뭐라고 굳이 장날 맞춰서 간다는 건지 불평 한가득 했지만 뭐 무거운 걸 드시게 할 수 없으니 커피 한 잔 얻어마시기로 하고 일단 따라나섰다.
시장은 어릴 때도 가끔 가봤다.
시장에 살 게 있어서 갔다기보다는 평소 지나는 길이 유난히 붐벼서 움직이기가 힘들 때 보면 여지없이 장날이었다. 장이 서면 각종 장사꾼이 전부 나와 저마다 자리를 펴고 별의별 것을 다 가져다 판다. 이런 걸 누가 사지? 싶은 것도 팔고 있는데 정말 사는 사람이 보이면 정말 신기할 지경이다.
아무튼 이 장의 목적은 고추 구매다. 입구에서부터 파는 할머니들이 주욱 앉아있다. 엄마는 슬쩍슬쩍 보시더니 더 안쪽으로 발을 바삐 옮기셨다. 고추 사신다면서 왜 안 사냐는 물음에 내가 찾는 게 아니야 하시면서 빨리 걸어가신다. 그게 그거 같은데, 크고 색 진하고 반짝반짝하면 좋은 게 아닌가? 하고 중얼중얼 불만을 입밖에 삐죽삐죽 내민다.
10군데 정도를 그냥 지나치시다가 점점 발걸음이 멈추기 시작하신다. 드디어 엄마의 마음에 드는 후보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나 보다. 이것저것 물어보시기 시작하신다. 이건 쪄먹는 고추인데 이런 거 말고 간장 고추 할 거라 하신다. 안 매운 게 좋다는데 겉모양 보고 안 매운 걸 안다는 게 참 신기하다. 이건 아직 안 익어서 안 될 것 같다. 청양은 안 되고 물 먹은 고추도 안 된단다. 약이 오른 놈도 안 되고 무조건 큰 게 좋은 것도 아니란다. 할머니들과 이것저것 실랑이하면서 점점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
저번 장 때는 마음에 쏙 드는 걸 파는 할머니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장에는 안 나왔나 하시면서 그 할머니가 있던 자리로 가보자 하신다. 어차피 다 똑같은 거 파는 게 아닌가 하고 물어보면 엄마는 안 그렇다며, 할머니들이 장에 내려고 어제 다 각자 골라놓은 것들이란다. 목적이 다르고 용도가 다르고 골라 파는 사람 안목이 달라 발품을 팔고 팔아야 마음에 드는 거 사는 법이라고 하셨다. 그게 시장이라 하신다.
그러다 엄마가 소리를 꺅 지르신다. 거보라며 발품 이렇게 파니 구하지 않느냐며 할머니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간다. 아휴, 이렇게 좋은 거 드디어 만난다며, 할머니는 삐딱하게 앉아서 뭔가 달인의 분위기를 뽐내며 항상 이 자리에 나오니 앞으론 다른 데 가지 말고 여기 곧장 와서 사라고 툭 내뱉는다..
한 자루 고추를 가득 담아 저울에 대충 무게를 재고는 할머니 뒤쪽에 따로 빼두었던 고추도 여기까지 왔는데 이 것도 한 번 맛이나 보라며 비닐봉지에 한 바가지 담아 건네주셨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내 눈에는 다 똑같은데 엄마나 할머니나 이게 더 좋다는 걸 알고 있다니. 나는 이런 데서 뭐 사기에는 참 안목이 없는 편이구나 하고 고개를 저었다.
집에 가는 길에 또 짐이 추가가 된다. 평소 장에 잘 안 나오는 잠옷 장수가 이번 장에 나왔다며 계절 바뀌기 전에 언제 나올지 모르니 사야 한다고 두어 개 집으신다.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관심을 보이니 엄마가 적극 추천한다. 가다가 고개를 둘러보며 무슨 나물 같은 걸 보고 이제 이게 나올 때가 되었구나 하시면서 엄마가 계절 바뀐 걸 실감해한다. 버섯도 몇 번 들었다 놨다 하더니 이건 이번 장 말고 다음 장까지 기다리면 물건이 더 좋겠다 하신다.
무슨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다.
은근한 이 매력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