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 랑이야, 안녕?

by 이승준

랑이가 별로 가버린 지 1년이 되었다.


11월의 첫 번째 새벽. 마지막 인사로 떠난 내 까만 고양이는 한동안 유골함에 담겨있었다. 꽃나무 밑에 묻어주겠다는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랑이가 생전 가장 좋아했던 책장 위에 랑이의 그림과 함께 곱게 올려두었다. 차마 보내줄 수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자리가 저 자리인데, 아직도 저 자리에 햇빛 가득 들어오면 좋아할 텐데. 문 밖으로 한 발자국 나가도 무서워서 떨던 아이인데. 하면서.


서울을 떠나면서 고향에 내려오는 길에도 나는 랑이가 있는 작은 함을 꼭 품고 왔다. 차만 타면 불안해서 울며 발톱 세워 꼭 매달리던 고양이가 생각났다. 그렇게 내려온 고향집에서도 나는 랑이를 보내주지 못했다. 그게 내가 가진 랑이와의 모든 것들 중 마지막 남은 작은 무게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시선 부딪힐 때마다 마음이 아렸다. 눈 밑이 시큰거렸다.


어느 날 농원 뒤쪽 언덕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저기라면 괜찮겠다,라고.


언덕 위, 라일락과 이름 모를 꽃나무가 언덕에서부터 쏟아지듯 내려와 언덕과 나무 사이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풀과 여러 식물이 무수히 자라서 다가가기는 복잡하고, 그러다 보니 뭐가 방해하지도 않을 것 같은 자리가 딱 랑이 자리였다. 여기라면 랑이가 좋아하겠구나, 했다. 나도 올려다볼 수 있고 랑이도 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 그 책장 위에서 몸을 길게 펴고 내려다보던 너의 모습처럼.


작은 삽을 챙겨 흙을 팠다. 나무 밑에는 딱 함 하나 묻을만한 작은 공간에 풀이 많이 나지 않으면서 보들보들한 흙 자리가 있었다. 그 부분의 흙을 열심히 하고 함을 묻어주었다. 여기라면 너도 좋아할 것 같아서 골랐다며, 내 미련이 뭐라고 너를 이제까지 붙잡고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이제 내 마음에서도 너를 보내주겠노라고.


예쁘고 단단하게, 몇 번이고 흙을 두드려 묻어주고 근처에서 예쁜 풀을 꺾어다가 둥글게 놓아주었다.


가끔 농원에 나와 랑이가 있는 곳에 시선 부딪히면 손을 크게 흔들며 잘 있느냐고 안녕? 하면서 물어본다. 언덕 위 흐드러진 나뭇가지들이 마음에 든다. 나뭇잎 사이로 바람 부딪히는 소리만 고요하게 무성하다.


낮은 곳이 넓게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봄 되면 라일락 쏟아져 내리고 가을엔 단풍 곳곳 물들어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 보기 예쁜 곳. 그늘이 시원하고 기분 좋게 바람 들어오는 곳.


내 고양이가 잠들어있는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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