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팔봉.
아니 수주팔봉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이야기를 조금 해야 한다. 나는 천상 집돌이어서 어디 뭘 보러 멀리 나가는 걸 싫어한다. 어디 여행을 가더라도 유명하다는 관광지를 찾아가 보지 않는다. 그냥 아무 계획 없이, 정처 없이 골목길이나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작은 풀숲 길을 찾아내는 일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누군가 충주에 온다 하면서 어디를 보고 가면 좋겠냐 물으면 나는 매우 당황한다. 맛집은 우리 집밥이 제일 맛있고 관광은 글쎄.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앉아있다 걸어 다녀도 좋은데 그런 걸 기대하고 올 관광객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반대로 내가 물어본다. 충주에 뭘 보러 오나요? 하고.
그럴 때 가끔 나오는 게 이 수주팔봉이다.
말 그대로 물 위의 여덟 개 봉우리라는 뜻의 수주팔봉을 대충 이야기하자면 어느 날 왕의 꿈에 여덟 개의 봉우리가 물 위에 있는 풍경이 나왔는데 그 비경을 찾아다니다가 달천강 자락에 있는 봉우리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 비경이 바로 충주의 수주팔봉이라는 이야기이다.
나에게도 이 수주팔봉을 가볼 기회가 생겼다. 마음먹고 간 건 아니었는데 근처 볼일이 있어 지나다가 사진 찍기 좋은 장소라며 길가에 세워진 표지판을 보고 어디길래 그렇지? 하고 가봤더니 이게 웬걸, 거기가 수주팔봉이란다.
드디어 여길 와보는구나 하고 본 수주팔봉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달천강이 흐르는데 그 강 옆에 거대한 바위 가운데를 수직으로 깎아 뚫어버려 양 옆으로 절벽이 만들어졌다. 그 절벽 사이로 물이 휘몰아쳐 들어와 옆에 다시 강이 흐르게 만들어진 구조였다. 정말 장관이었다.
표지판은 여전히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고 고개를 들어 그쪽을 보니 좀 만만한 높이의 산 중턱에 뭔가가 분명 있는 느낌이다. 나무로 만든 구조물이 빼꼼하고 나무들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은 저기까진가? 하고 한 번 올라가 보기로 마음먹는다.
칼산. 돌이 칼처럼 깎여 만들어진 것처럼 삐죽하게 박혀있는 돌산이었다. 경사의 변화폭이 심해서 길마다 비치되어있는 밧줄을 잡지 않으면 매우 위험할 것 같은 산이다. 분명 머리 위에 있던 것 같은 높이였는데 암만 가도 끝이 안 보인다. 오히려 내리막길이 있어서 정말 이 길이 맞나 하는 의심이 끊임없이 든다.
등산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거 올라가서 다시 내려올 텐데 뭐하러 올라가 하고 말하는 쪽의 사람이다. 그런 내가 지금 어쩌다가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고 적힌 표지판 하나 믿고 여기까지 와버렸다는 게 참 신기할 노릇이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고쳐먹고, 내리막을 다시 마주하며 이건 진짜 길을 잃은 것 같다고 생각하던 것이 대여섯 번 정도 반복되고 나서야 뭔가 확실해 보이는 길이 나타났다.
이번에도 거짓말이면 가는 길에 표지판을 다 뽑아버려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른 수주팔봉 전망대의 모습은 음.
아. 절경은 절경이구나.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올라간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좋은 사진을 찍겠다며 열심히도 돌아다녔다. 사진은 진짜 잘 나오잖아! 하면서 표지판에 속은 건 분명 아닌데 뭔가가 문득 억울해졌다. 이거 보려고, 정말 이런 좋은 풍경 하나 보기 위해서 이런 고생을 하는 걸까? 하고 생각해본다. 분명 좋은 일이긴 한데 이건 너무 수지 안 맞는 장사 아닌가 싶은 억울함 같은 거지. 그리고 이 풍경은 사진으로 다 담기도 참 어렵고.
숨 트이는 멋진 광경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셔터를 누르다가 이게 뭔 짓인가 싶어 그냥 주머니에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경치나 뜯어보자며 난간에 턱을 괴었다. 은근히 등에 배어 나오던 땀이 식어 시원해졌다. 시원하긴 하네, 하면서 언젠가 마음 막히게 하는 무언가가 나를 괴롭게 하면 여기 오고 싶어 질지도 모르겠다, 하고 생각했다. 난간에 팔을 포개 얹고 옆얼굴을 팔꿈치 안쪽에 묻고 남은 눈을 살짝 떠서 강을 바라보았다.
강바람이 찬데 왠지 모르게 나른해지는 기분에 잠깐 졸았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