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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8. 우리 집 담벼락은 쥐색인데요.

by 이승준

골목길을 칠하던 사람들이 결국 일을 냈다.


우리 집 담벼락에 마음대로 옥색 페인트를 칠해버린 것이다. 요즘 해가 짧아 옥색인 줄 모르고 엄마가 집 앞에 페인트를 다 칠해주었다며 좋아하시면서 자랑했다. 그런데 색이 뭔가 이상한 것 같아서 핸드폰 불빛을 비춰보니 옥색이더라.


이게 무슨 일이냐며 엄마는 노발대발하셨다. 알아보니 동네 골목을 칠하는 사람들이 전문가가 아니고 봉사자들로 구성되어있어서 전문성이 굉장히 없는 상황이란다. 그래서 페인트 조색은커녕 칠하거나 벽화를 그리기 전에 집주인과 완성될 작품에 대해 의논하기도 어려운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이 색이 예쁠 것 같아서 칠하자! 해서 결정된 색이 옥색이라는 것이다.


담당자는 다시 색을 원래대로 칠해주겠다 약속하고 돌아갔고 얼마 뒤 누군가들이 와서 담을 칠하긴 했다. 그런데 색이 이번에도 뭔가 이상하다. 이번엔 또 너무 하얗다. 나는 그걸 보고 동네가 떠나가라 웃었다. 엄마는 매우 화를 낼 일이겠지만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우스웠다. 이 색을 칠하기 까지 얼마나 고민하다가 결국 한 번 발라봤는데 색이 다르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벽 옆에 조금 칠하다가 결국 도망갔는지 애먼 붓 자국만 조금 남았다. 엄마와 아버지는 허탈해서 허허 웃으셨다.


이후로 우리 집은 계속 이렇게 덜 칠한 하얀색 페인트와, 옥색 페인트와, 원래 색인 쥐색 담이 서로 공존하는, 우스운 형태의 담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 담을 볼 때마다 뭐가 그리 우스운지 한바탕 웃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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