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 아스팔트 슬로프

by 이승준

예전 집 뒤편에는 굉장히 넓은 내리막 길이 시원하게 뚫려있었다.


이 내리막은 충주 시내에서 보기 드문 길로, 넓으면서, 차가 다니지 않고, 길게 뻗은 특징이 있다. 예전에는 중앙을 분리하는 표시도 없었고, 옆에 큰 체육관이 들어오기 전에는 주차된 차도 없어 정말 시원한 길이었다. 경사만 없었다면 활주로로 써도 괜찮았을 것이다.


불면증이 한창 나를 괴롭히던 그 시절의 새벽에는 종종 몰래 2층 내방 창문을 넘어 집을 나와 이 길을 천천히 걸었었다.


그러던 언젠가의 밤, 이 곳으로 스케이트 보드를 타러 오는 형들이 있었다. 이 긴 아스팔트 슬로프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그 형들의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그 이후로 꾸역꾸역 돈을 모아 보드를 샀다. 왠지 나만 아는 명소가 그 밤에 다른 이들에게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걸 보고 새로운 로망을 가지게 된 기분이었다.


물론 나는 그들처럼 잘 타진 못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타고 내려가며 그 슬로프를 감질나게나마 즐겼다.


지금은 이 도로도 이것저것 뭔가 생기면서 시원하게 뚫린 시야를 조금 방해하는 것들이 생긴 모양이다. 주변에 체육시설도 들어오고 아파트도 여기저기 생기면서 사람들이 꽤 많아진 탓인가 보다. 이제 밤에는 내가 봤던, 그 보드 타는 형들은 오지 않겠지. 하고 천천히 걸어내려가 본다.


역시 나만 알고 있기에는 몸집이 너무 크긴 하지.

그래도 아직은 사람이 없어 조용하고 한적하니 좋구나.


하면서 혼자 고요한 길 가운데 노래 불러 던지며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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