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 우레탄 트랙이 사라진 사연

by 이승준

우리 고등학교는 나름 명문이다.


비록 작은 도시지만 이래 봬도 꽤나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짱짱하게 사회에 포진 중이시다. 하지만 지금부터 할 이 이야기는 이런 선배들이 학교에 뭔가 해주고자 큰돈 들였다가 실패했던, 웃지 못할 사연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학교 운동장을 사용할 수 없단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동문들이 몇 억이나 되는 큰돈을 모아 운동장을 개선해주겠다고 했단다. 나름 명문고인데 흙바닥에서 후배들이 먼지 먹는 게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잔디라도 깔아주나? 했더니 대세는 그게 아니란다. 우레탄이란다.


우레탄?


체육에 환장한 놈들 먼저 수군대기 시작한다. 효율이 도 좋을 거라나 뭐라나. 선생님들도 이래야 품격에 맞는다는 둥, 한층 더 멋있어질 운동장에 대해 한껏 어깨에 힘이 들어간 모습이었다. 나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공사가 끝나고 막상 우레탄이 깔리고 나니 그들의 기대가 어찌 그리 높았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문제는 그게 여름이었고 우리 학교가 언덕 위에 있었으며, 아주 중요한 문제 하나를 간과한 공사였다는 것이다.


바로 배수의 문제였다.


지대는 높은데 무슨 문제였는지 물이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배수시설을 다른 학교의 운동장과는 다르게 구축했어야 했는데 우레탄 시공업자는 이걸 간과한 모양이다. 이 멋들어진 운동장의 우레탄은 주말에 이어 비가 내리던 어느 월요일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물지옥을 선사하게 된다.


운동장에 물이 갇혀 어떤 길에는 허벅지까지 물이 차올랐다. 학생들은 물을 헤집으며 어떻게든 등교해야 했고, 그날은 전례 없는 지각생을 만들어낸 날이었으며, 차를 끌고 운동장에 주차하려던 선생님들마저 당황하게 만든 최악의 날이었다.


비가 그치고도 물은 천천히 빠졌다. 빠지다가도 비가 다시 내렸고, 아마 이 장마기간은 우리 고등학교가 생긴 이래로 최악의 재해가 되었을 것이다. 물이 다 빠지기 전에 다시 비가 내리지 않길 비는 수밖에 없었다. 그 기도가 무색하게 비가 내렸고 결국 비 때문에 등교를 못 하겠다는 아이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물이 다 빠지고 나자마자 우리 학교의 우레탄 트랙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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