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 서브컬처와 EBS의 간극, 글벗책방

by 이승준

글벗책방은 정말이지 이상한 책방이다.


서점이라는 단어보다 정말로 책방이라는 단어가 훨씬 잘 어울리는 곳이다. 낡은 나무문을 옆으로 드르륵 하고 열면 머리를 숙여야 할 것 같은 아주 낮은 공간에서 인테리어도 제대로 하지 않아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난 좁디좁은 공간에 책꽂이가 들어차 있다.


책꽂이 사이사이는 한 사람이 지나가는 것도 겨우 일 것 같이 비좁다.


그런 책방은 아저씨 한 분이 지키고 앉아있다. 낮은 층고가 왠지 모르게 편해 보이는 작은 체구에, 목소리는 살짝 코막힌 것 같이 앵앵 거림이 느껴지는 묘한 아저씨가 문에 달아놓은 풍경이 딸랑거리면 스윽 나오셔서 필요한 걸 물으신다.


작아도 없는 게 없다.


특히 문제집이 그랬는데, 시내로 나가야 하는 큰 서점 못지않게 온갖 문제집이 다 구비되어있다. 뭔가 있냐고 물어보면 아주 능숙한 손길로 책 무더기에서 정확하게 한 권 골라 꺼내 준다. 큐레이션도 기가 막히다. 요즘 뭔가 고민이 있는 과목에 대해 구구절절이 떠들고 뭐 하나 추천해 달라고 하면 문제집 몇 권 스윽 꺼내서 딱 알맞게 추천해준다.


이게 나름의 빅데이터로 가능했던 일인데, 공부 잘하는 학생 몇몇을 꿰고 있다가 그들이 뭘 사가는지 유심히 지켜보시고는 해당 교과목의 문제집 난이도와 인기, 목적 같은 걸 나름의 기준으로 정리해놓았다. 외에도 문제집을 사가는 학생들에게 꾸준히 리뷰를 물었고, 그 결과 팔리지 않는 문제집을 들이지 않고 잘 나가는 문제집만 알맞게 그 좁은 책방에 끼워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방의 매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깨끗한 문제집이나 교과서를 중고로 사주기도 하고, 한 명이 자기 반에서 단체로 주문을 받아오면 아저씨와 적당한 할인가를 형성할 수 있는 여지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브컬처의 메카 같은 곳이었다.

각종 게임 잡지와 여간해선 구하기 힘들었을 만화 잡지, 만화책 같은 것들이 책방 구석에 빼곡히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책방 구석에서 알 수 없는 대화를 하고 있는 학생과 책방 주인이 목격되고는 했다. 주어를 못 알아들어 알 수 없는 대화라고 했는데, 얼핏 들어보면 무슨 암거래라도 하는 것 같은 내용이었다. 무슨 물건 들어왔나 물어보거나 요즘 현황이나 시장 시세 같은 이야길 한다. 예전엔 그게 뭔가 했는데 나중에야 무슨 만화 관련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책방도 여전히 건재한 걸 보니 감회가 새롭다. 예전만큼 만화나 게임잡지 같은 서브컬처의 붐이 불고 있진 않지만 여전히 빼곡하게 붙어있는 포스터들이나 광고는 붙인 지 얼마 안 돼 보인다. 아직도 아저씨는 여전하실까 하고 알짱거리면서 포스터 너머 책방 안을 흘끔흘끔 훔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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