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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 깡통로봇 열일한다.

by 이승준

깡통로봇 난로는 한 번 소개한 바 있다.


여기저기 녹슬어 뭔가 제 기능을 못할 것 같지만 정겨워 보이던 그 비주얼은 이제 깔끔하게 칠한 페인트로 멀끔하게 농원 야외 작업장 한가운데를 턱 하고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날 따뜻하던 때에 어디 구석에서 아늑히 쉬고 있던 분위기가 잘 어울리던 녀석인데 뭔가 억지로 정장 입혀놓고 무대 위에 멀뚱멀뚱 세워놓은 것 같기도 했다.


그도 그럴게 얼마 전까지는 사실 난로를 안 피워도 그럭저럭 버틸만했었다.


화목난로의 단점이 여기에 있다. 하루 중에 몇 시간 안 춥자고 불 오래가는 이 난로를 켜기가 애매하다. 한 번 불 붙이는 게 시간이 꽤 걸릴 뿐 아니라 그렇게 붙여놓으면 일단 넣은 장작 다 타고도 한참 후까지 열기가 대단하므로 잠깐 좋자고 달구기에는 뭔가 부담스럽다.


그런 녀석이 요즘엔 드디어 열일한다.


이제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오들오들 떨며 깡통로봇의 입을 벌리고 장작부터 집어넣는다. 쪼그려 앉아 불이 잘 붙나 구경하고 있으면 배기통 밖으로 퍼지는 연기가 꼭 물그림자처럼 머리 위로 퍼져서 눈 앞의 햇빛이 하늘하늘거린다. 그러면 잘 붙고 있구나 하고 장작을 더 넣어준다.


깡통 로봇의 디자인이 왜 이렇게 생겼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대체 이 눈 부분은 왜 달려있는 거지 하고 한 번 쑤욱 잡아 빼 보았다. 세상에. 뭔가를 넣고 굽는 용도란다. 너무 좋으니까 한번 더 외쳐본다.


세상에.


아버지는 생밤을 가져와 칼로 꼭지 부분을 똑똑 따셨다. 안 그러면 밤이 펑펑 터진다나. 깡통 로봇의 눈을 서랍처럼 잡아 열고 밤들을 또르륵 굴린다. 그러고는 눈을 밀어 넣고 그저 불으나 쬐며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안달이 나서 차마 멀리 못 가고 고 앞에 쪼그려 앉아 로봇과 아이컨택을 하고 있는다. 좀체 표정을 지어주지 않는 로봇은 그냥 기다리라는 듯, 어찌 보면 정말 무심하게도 보인다.


그러다 퉁, 하는 소리가 들린다. 밤 껍데기 안 쪽이 압력을 못 이기고 밀려나며 살짝 터지는 소리다. 아버지는 로봇 눈을 전부 열어 밤을 로봇 머리 위에 모아놓고 하나하나 칼로 까주신다. 잘 익은 밤은 칼만 가져다대도 껍질이 벗겨진다며 신나게 밤을 까주신다.


한 번 더 나지막이 외쳐본다. 세상에.

갓 구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 밤맛은 정말 이 계절을 사랑할 이유 중 하나로 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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