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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 눈이 왔다.

by 이승준

올 겨울, 우리 동네에 내리는 첫 번째 눈이다.


어제저녁부터 뉴스에서 이 지역에 눈이 올 거라는 소리를 듣고 눈이 온대, 눈이 온대 하면서 손을 바둥바둥 흔들었다. 엄마는 네가 눈 온 골목을 쓸어봐야 눈을 싫어하게 될 거라며 고개를 저으셨고, 아버지는 도로 사정을 걱정하셨다. 나는 아직도 애인지 그저 눈 온다는 소식에 들떠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큰 기대 가지고 나선 마당의 하늘은 너무나도 맑았다.

눈 온댔는데.


뭔가 시무룩해진 나는 농원에 가면서도 연신 눈 온댔는데, 분명 눈 많이 올 거라고 조심하랬는데, 하며 맑은 날에 불평을 잔뜩 쏟아내었다. 이렇게 추우면 한 번쯤은 펑펑 내려주어도 괜찮을 텐데 하면서.


눈이 올 조짐이 확연히 보이게 된 건 점심 무렵이었다.


우연히 밖에 나가 본 하늘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나는 홍차 한잔 따뜻하게 내려 농원 마당에 있는 의자 하나에 앉았다. 마침 할 일도 별로 없고, 이렇게 된 거 한 번 눈을 기다려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여유가 있어서 뭔가 기약 없이 온다는 존재를 마냥 기다려보는 것도 처음이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살짝 눈발이 흩날리는가 싶더니 이내 눈이 내린다.


비닐 마감의 농원 건물 위에 쌀 쏟아지듯이 우두두두 소리가 들린다. 바람에 흩날린 눈이 안경에 달라붙어 작은 물방울로 터져 매달린다. 뻗은 손과 팔 여기저기 눈꽃이 피었다 금세 사라진다. 나는 기뻐서 차 다 마시고 식은 컵 쥐고도 한참을 바라보았다.


눈이다.


온다는 소식에 마냥 좋아 기다렸다.

네가 이번 겨울 우리 동네 처음으로 온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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