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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 소녀상

by 이승준

생각 없이 집 근처를 돌아다니던 와중에 발걸음이 멈추었다.


평화의 소녀상.


시내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골목 안쪽 주차장 옆에 소녀상이 있었다. 높지 않은 건물 사이사이 넓은 땅이 있는 건 당연한 풍경이었지만, 이런 탁 트인 풍경 아래 앉아있는 소녀상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올해 3월 1일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몇 년 전, 소녀상에 대해 내가 운영하던 콘텐츠 채널에 소녀상에 대해서 소개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봤던 적이 있었다. 발 뒤꿈치를 들고 있는 의미나 어깨 위의 새의 의미. 그림자와 옆에 있는 의자의 의미. 이런저런 다양한 의미에 대해 나는 활자로 찾아보고 사진으로 보며 어떻다 저렇다 하고 글로 써본 적이 있었다.


처음, 이 소녀상을 마주하고 나서 그때 그 글이 굉장히 부끄러워졌다.


내 눈앞에 있어 직접 보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나는 이 정도 마음에 느끼는 것도 모른 채로 뭐가 잘났다고 사진 몇 장 보고 글 몇 개 찾아보고 활자 몇 자 적어서 사람들에게 소녀상을 소개하려고 했던 걸까. 했다.


공기부터 달랐다. 바람 소리도 차분하다. 알 수 없는 경건함에 먼지 하나 털어내려 손 뻗는 것도 조심스럽다. 동상의 질감이 차갑지 않다. 분명 살아있지 않은, 그저 동상임에도 눈이 자꾸만 아래로 간다. 그 강인한 표정을 오래 보기가 어렵다. 주먹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게 느껴진다.


누군가 어깨 위 새에 둘러놓은 천 팔찌에 눈이 간다.

소녀 옆에 놓인 화분이 예쁘다.


우리 동네 자랑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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