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역은 어릴 때 봤던 모습 그대로이다.
검표하는 기계나 사람도 없고 1층짜리 작은 건물 문 두 개를 지나면 눈 앞에 철로가 펼쳐진 플랫폼이 나온다. 철로 사이사이에는 낮은 턱을 연결하는 나무 발판이 마련되어있고, 이 발판을 건너 다니며 내가 탈 기차가 어디서 설 지 한참 찾아다녀야 한다.
어릴 때는 기차를 자주 탔던 기억이 있다.
무슨 목적으로 많이 탔는지 도착한 이후의 기억은 없지만 기차를 탔다는 기억만 남은 걸 보니 그게 그렇게 좋은 기억이었나 보다. 간식 카트가 언제 오나 목 빠지게 기다리던 기억도 좋고 널찍한 창문 밖으로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는 걸 보는 게 좋았던 기억도 있다.
충주를 떠나면서 버스와 지하철을 더 많이 타다 보니 기차는 자연히 멀어졌다.
그래도 갑갑한 지하는 싫어서 버스를 고집하며 타고 다녔다. 그러다가 지하철의 속도와 편리함을 알게 된 이후로는 지하철을 고집했다. 언젠가 스크린도어가 깔리면서 갑갑함은 한층 더해졌지만 그래도 그게 가장 효율이 가장 좋았다. 매일 보는 익숙한 루틴이 되어있을 때쯤, 기차는 전해진 시간이 되면 나와 사람들을 빨리 포장해서 목적지에 늦지 않게 데려다주는 존재 정도가 되었다.
서울을 떠나 이제 그 생활이 멀어진 요즘, 나는 기차를 탈 일이 생겼다.
어딘가 놀러 갔다가 오는 버스가 모두 매진이어서 어찌어찌 기차 편을 발견하고 타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탄 기차에 뭔가 생각이 많아졌다. 카트는 이제 없고 자판기가 있었다. 의자는 뭔가 더 세련되었고 각종 디스플레이들이 영상을 끊임없이 내보내고 있었다. 나는 자판기에서 초코바 하나를 뽑았다. 딱히 먹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마침 지갑 속 잔돈이 딱 그 초코바의 가격이었다.
도착한 충주역은 어릴 때 기억 그대로였다. 플랫폼에 서서 기차가 지나고 난 뒤 천천히 걸어보았다. 갑갑함 없이 한적함만이 남은 이 공간은 마치 스크린에서나 볼 풍경같이 비현실적이었다. 철로가 그대로 노출되어있고 이 사이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고, 기차가 오는 덜컹거림이 공기에 담겨 그대로 전신을 덮쳐 전해져 오는, 그런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은.
문득 그러한 효율성에 점점 젖어가다가 결국 이런 풍경을 희생하고 살게 되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철로를 밟으며 잠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