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 드러누운 담벼락.

by 이승준

집에 가는 길에 담이 무너져있다.


아이고 이게 웬일이냐. 이 평온하고 조용한 동네에 누가 이런 실수를 저지른 거냐. 암만 봐도 차로 들이받은 것 같다. 담벼락이 통째로 떨어져 내동댕이쳐져 있다. 이 정도면 부딪혔다가 놀라서 브레이크 대신 다른 걸 밟은 것 같다. 이런 변고가 있나.


일단 담이 길로 안 떨어지고 안쪽 사유지로 무너졌다. 이른 아침, 길의 쓰레기를 줍는 노인들이 치워주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무겁기도 한 데다가 그들의 소관이 아니다. 그냥 슬쩍 보며 어이구 어이구만 반복한다. 사실 그 누구도 손을 내밀 생각이 없다. 불편한 것도 없는 걸.


며칠이 지났지만 일단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상황이기에 그냥 저대로 하나의 작품처럼 남아있다. 신기하게도 아무도 안 치워서 뭔가 그냥 하나의 문이 더 생긴 느낌인데, 어차피 이 성공회 앞마당은 언제나 개방되어있는 대문과 낮은 담이라 크게 신경 안 쓰는 듯하다.


앞으로 당분간 이 담은 이렇게 누워있을 것 같다.

뭐 정말 불편한 것도 없고 하니 이대로 조형물처럼 두고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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