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짐을 싸던 날의 이야기이다.
버려야 할 옷이 잔뜩 쌓였다. 전 연인이 선물해준 옷가지를 아직도 못 버리고 어딘가 고이 개 놓았던 것도 이제는 할 짓이 아닌 것 같다며 버리기로 했다. 언젠가 다시 살이 빠지면 입겠거니 하던 옷가지도 전부 꺼냈다. 몇 번 입고 도저히 안 어울려서 모셔만 두던 옷도 전부 꺼냈다.
그렇게 쌓아만 두고 또 버리지 못했다.
나는 정말 버리는 걸 못하는 사람이다.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애정이 쏟아지고 기억이 남아있다. 그나마 지금은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선물이라도 받으면 포장지도 버리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내 옷가지를 버리라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고 과감한 결심이었을 터다.
결국 쌓여있는 옷가지를 열심히 버리긴 했지만 집에 내려오는 날까지 절만 정도는 어쩌지 못하고 있었고, 결국 다시 장에 넣었다가 한아름 짐이 되어 충주로 내려오게 되었다. 집으로 내려와 내 방에 짐을 넣으며 다시 잡은 옷가지들을 넣으려다가 이러면 영원히 나는 앞으로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버리기로 했던 옷가지 보다 더 많은 짐을 짊어지고 밖으로 나왔다. 집 근처 골목에서 오고 가며 낯익게 봤던 의류수거함으로 갔다. 그리고 투입구에 내 추억을 밀어 넣었다.
통은 큰 주제에 입구는 작아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짐을 내던지고 하나하나 의류함을 잡고 쑤셔 넣어 가며 씨름해야 했다. 첫 옷을 버릴 때만 해도 뭔가 망설여졌지만 이젠 이야기가 다르다. 그냥 빨리 다 버리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이 야밤에 내가 뭐하는 짓이야, 하면서.
열심히 씨름하다 보니 결국 투입구로도 내가 버린 옷가지가 보일 정도로 의류수거함이 다 차올랐다. 다 되었구나 하고 한숨을 한 번 크게 쉬고 나니 맨 위에 있는 옷이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 어렴풋이 떠올랐다.
다시 손을 넣어봤자 저 옷은 못 꺼내겠지.
가로등 아래 의류수거함을 마주한 내 꼴이 꼭 어릴 때 본 만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어른이 되기 위해 자신이 아끼던 베스파와 이별을 이야기하던 장면. 뭔가의 이별을 떠올릴 때 항상 머릿속에 그리는 그 그림이다. 한참 서있다가 뒷걸음으로 멀어질까 하다가 몸을 돌려 집으로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