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잠시 들렀다 충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떠버려서 나는 터미널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 걸터앉아 가방에서 휴대용 게임기를 꺼냈다. 귀에 이어폰을 꽂으려는데 누군가 옆에 앉아 말을 툭 건다. 공부하는 사람인데 시간 좀 내달란다. 또 어디선가 포교하러 왔나 보다. 그래도 게임보다 지루하진 않겠다 싶어서 대화해보기로 했다.
요즘 행복하냐고 물었다.
너무 뜬금없이 너무 큰 질문이네요, 했다. 행복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불행하지 않은 거란다.
불행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어서 나오는 거란다.
그럼 행복하고 싶어 하는 것도 원하는 게 아니냐고, 욕심이 아닐까요, 하고 물었다. 만약 욕심이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거라면, 끝내 행복해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이 행복을 의미하는 걸까. 이렇게 물으니 그 사람도 고개를 갸웃한다.
나는 다시 생각해본다. 아득바득 삶에 치여 살았다. 분명 그때는 움직이기 위해 목표가 있었다. 뭔가 이루기 위해 이룰 것을 놓치면 안 되었고 그것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아야 했다. 그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 날카로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삐죽삐죽한 마음에 여기저기 찔려야 느껴지는 고통이 삶을 자각하게 하는 큰 수단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꼬리 치며 달려오는 강아지에게 간식을 주고 아침 공기 한 번 들이마신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하는 것에 대해 반갑고 감사하고, 잊고 살았던 어릴 때의 기억이 겹쳐 보이며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상상하던 때를 떠올린다. 뭔가 하고 싶으면 조급하지 않고 천천히. 실패해도 괜찮으니 느리지만 조금씩 해나가는 게 일상이다. 어디 하나 모난 곳 없는 조용한 공 같은 게 요즘 내 마음의 모양이다.
어느샌가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확신은 없지만 분명하게 대답했다.
행복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