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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잡썰

그 회사는 마치 전여친 같아서(3)

문의메일, 2편은 쓰는 일이 없었으면 해

by 이승준

내가 어떤 인간인가.


문의 메일로 그 보상도 배상도 안해준다는 미친 게임 회사에서조차 정성을 들인 문의 메일과 온갖 드립의 향연으로 마침내 보상을 빨아먹은 문의 메일계의 이서방이 아니겠는가.


김가놈과 김서방이 주는 고기가 다르다는 선조의 교훈은 여기에서도 늘 통한다.

그러니 나는 선생님들게 읍소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자세를 잡아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111% 선생님들은 편안한 주말 보내셨는지요?

저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주말내내 랜덤다이스를 플레이 하지 못했거든요.


이 문의글을 아마도 어느 선생님께서는 열람하시겠지요.

제가 허공에 글을 쓰는 슬픈 일이 아니기만을 바라며 문의하기를 다시 한 번 눌러 글을 시작해봅니다.


주말에도 문의하기 계속 눌러서 혹여나 한 번이라도 돌아봐 주시고 오류를 수정해주실까,

제가 접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진 않을까 하고 백번 천번 생각했지만,

저는 선생님들이 주말에도 일을 하시어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애사심을 잃고 인류애를 잃는 것이 걱정되어,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저의 접속 오류를 해결해 주실 개발 업무에 지장을 줄까봐,

그리하여 제가 접속해서 랜덤다이스를 플레이 할 시간이 1분이라도 지연될까봐,

노심초사한 마음으로 월요일까지 꾹 참고 꾹 참았답니다.


제가 이 게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시려면 지금으로부터 4년 전으로 이야기가 거슬러 올라간답니다.

저는 2017년, 당시 111%의 BBtan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아, 이 회사는 된다. 이 회사 재밌겠다.


그리고 지원 공고가 있길래 저는 매우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

게임 업계에 경력이 없는 나는 어떻게 어필을 해야하나.

그래서 결국 생각해낸 것이 111%에서 출시한 모든 게임을 받아서 플레이해보고 리뷰와 개선방향, 기획을 해보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방대한 포트폴리오가 완성 되었고 저는 마감일 자정이 되어서야 비로소 메일을 통해 제출하였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나름의 엄청난 정성을 들였음에도 111%는 저에게 불합격 통지 메일 한통 조차 없더군요.


예, 제가 금요일에 보낸 게임 접속 버그 문의하기처럼 말입니다.

아주 처참하게 씹혔지요.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을 기다리다 저는 그만 지쳐버렸고,

제 아이폰 메인 화면 한 구석을 굳건하게 지키고 던 111% 폴더는 끝내 삭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111%를 제 인생에서 지우기로 마음 먹었지요.

앱스토어 상위에서 계속 랜덤다이스를 추천해 줄때도 저는 꾹 참았습니다.

마치 전 여친의 인스타 프로필이 추천 친구에 뜨는 것 같아서 괴로웠습니다.

선생님은 헤어진 연인의 프로필이 sns추천 친구에 뜨는 것을 경험해본 적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제가 랜덤다이스를 다운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그 감정의 노동을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답은 늘 그렇듯, 누르지 않는 것이 맞는 거였겠지요.


예, 선생님들이 그 플레이어블 광고를 그렇게까지 잘 만들지만 않았어도 말입니다.

저는 분명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문득 플래시 광고를 볼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광고를 재생했습니다.

저는 광고를 전공했지만 광고라면 학을 떼는 사람입니다.

유튜브도 프리미엄 쓰고요 무슨 게임이든 일단 광고 제거 패키지부터 사고 시작해야 숨이 트이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무슨놈의 보상을 받아 제가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 광고 재생을 눌러버리는 바람에 저는 랜덤다이스를 한 번 플레이해보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광고 역사에 길이 남을 시도 하나를 알고 계십니까.

광고를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광고를 보여주면 효과가 얼마나 크게 나타나는가에 대하여,

실험을 해보기 위해 탈북한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보려는 시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실험하기도 전에 광고에 노출이 되어버리는 바람이 급격하게 자본주의에 순식간에 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바로 그랬습니다.


그동안 마음을 부정하고 싫다며 억지로 밀치고 외면했던 광고와 111%의 수작이라 일컬어지는, 중년게이머 김실장이 칭찬하던 그 게임이 한데 만나 저에게 불현듯 찾아온 것입니다.

저는 광고가 끝나는 동시에 다른 주사위로 플레이 하겠냐는 그 메시지를 누르면 앱스토어로 리바운드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홀린듯 눌렀습니다.


아, 문의글이 너무 긴데요 반응 좋으면 2탄 써드리겠습니다.

2탄에서는 제가 어디 대학 캠퍼스 잔디밭에 똥이라도 싼 이야기를 담아드릴테니 답변좀 꼭 부탁드립니다.


우선 기종은 -- 입니다.

증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로딩이 끝나면 (게임 대기열에 진입중이라는 문구가 마지막으로 보입니다.) 게임 화면이 까맣게 나옵니다.

앱 종료 이후 재시작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임 삭제 - 재설치 시

개임센터 로그인 -> 같은 증상입니다.

익명 로그인 -> 됩니다.

그런데 계정 연동 이후 로딩이 끝나면 다시 로딩이 시작되네요. 무한히요.

한 20번 정도 재설치 하다가 메일 보내드립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유저 배상.



사실 이 문의 메일 내용이 아까워서 써먹으려고 이 글을 시작했다.

자 이제 나는 이 메일에 답이 없다면 문의메일 2탄을 써야한다.


제발 게임좀 되게 해주라.

그러나 내 바람과는 상관없이 거짓말처럼 1영업일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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