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만 있어라 내 새끼
일단은 뒤집은 맥북을 허망하게 바라보며 재빨리 핸드폰을 꺼냈다. 애플 케어 플러스 같은 거 들어놓지도 않았는데 당연히 엄청 비싸겠지. 그런데 이 노트북 꺼진 건 맞나? 살짝 열어볼까? 아니야 건드리지 말자. 살아만 있어라 내 새끼. 하고 정신없는 고민을 왔다 갔다 하면서 가장 가까운 수리센터를 찾아보았다.
충주에는 딱 한 군데 공식 수리센터가 있다. 아니 있었다. 지금은 없으니까. 예전 위니아가 아닌 대우의 이름을 달고 있던 수리센터가 있더랬다. 나는 갈 때마다 편하고 좋았는데 이유는 뭐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니까. 갈 때마다 대기해본 적도 없고 기사님들도 정말 별의별 사소한 질문도 다 받아주시고 시간 오래 걸려도 다 받아주시고 했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철수하는 게 맞지. 내가 좋아하는 한적하고 조용한 작은 골목 카페는 문을 닫는 법칙 같은 거지. 손님이 없으니. 아무튼 이 작은 도시에서는 공식 서비스 센터가 없다. 아니 없어졌다. 애초에 있는 게 이상했으니까. 그럼 가장 가까운 데가 어디냐. 네이버 지도로 검색해보니 이천이 나온다. 젠장. 행정구역상 도가 달라지잖아.
사설 수리를 맡겨볼까 고민해봤다. 애플은 공식 센터 가서 답이 안 나올 때 마지막 수단으로 사설을 선택하라는 말이 있다. 사설센터에서 열었던 흔적이 있으면 공식 센터에서 안 받아준다는 그런 이야기. 아아악 모르겠다. 머리를 쥐어짜 내다가 마침 서울에 있는 친구 집에 다다음날 방문하기로 했던 게 기억났다. 검색해보니 집 근처 2 지하철역 거리에 수리센터가 있는 것도 발견했다. 서울 만세다.
그래, 일단 공식 센터 가보고 이상 없으면 다행인 거고 이상 있어서 비용이 왕창 나오면 사설 수리를 생각해보자! 하고 생각했고 결과적으로 이 판단은 맞았다.
나는 내 새끼 살아만 있으라며 기도했고 친구에게 양해를 구해 센터 먼저 들를 것을 청했다. 친구는 같이 걱정해주며 근데 침수 확인 비용이 88,000원이네?라는 말을 돌려주었다. 수리비용이 아니라 확인 비용이다. 결과적으로는 이 비용이 비싸다고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의 서비스를 받았지만 그 당시에는 이거 좀 비싼 거 아닌가 생각했다. 사설 수리점 어디는 세척해주는데 5만 원 대라던데. 하면서.
아무튼 그날이 찾아왔고 공식센터로 맥북을 모셔갔다. 굳게 다물어진 맥북 양 옆으로 팔랑거리는 휴지는 누가 봐도 침수 노트북이었고 응급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마음이 이런 걸까 생각하며 수리센터의 문턱을 넘어섰다. 누가 봐도 침수였기에 대응도 신속했다. 나는 그동안 무수히 많이 검색해온 지식으로 사고의 원인과 정황을 설명했다.
종이컵에 들어있던 액체를 흘렸어요. 차 종류인데 거의 물에 가깝고요 종료키 근처에 조금 흘렸는데 흘리자마자 키보드 위는 닦아냈고 전원 선 다 뽑아내고 전원을 끄고 혹시 몰라 휴지를 깔고 뒤집어놨어요. 흔들거나 강제로 말리진 않았는데 닦는 도중에 키가 눌려 전원이 한두 번 켜졌어요.
기사님은 혹시 종이컵으로 치면 흘린 양이 얼마나 될까요? 하고 물으셔서 종이 컵으로 칠 것도 없이 작은 양이라며 esc에서 가장 멀리 번진 정도가 s키 정도 된다고 했다. 이렇게 설명하면 맞나? 아무튼 기사님은 오호,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일단 뭔가 긴 서류에 사인을 몇 번 하라며 주었다. 데이터가 날아가도 상관없다는 서류라는데 역시 사람은 클라우드를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사인했다.
침수 같은 경우는 당일에 확인이 안 된다고 한다. 분해 후 만 하루 동안 말린 후에 테스트를 거쳐 이상이 있는 부품을 찾아내는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이상이 발견되면 고치는 과정은 그 이후 연락을 주고 진행된다고 했다.
하루 동안 마음 졸이며 기다린 결과 상태는 정상이었다. 야호!
들어간 물도 많지 않았고 손상을 입힌 것도 없어 보였으며 테스트 결과 모든 게 이상 없이 잘 작동된다고 했다. 다만 침수라는 건 언제 어떻게 고장의 원인이 될지 모르니 100% 아무 이상 없다는 판단은 할 수 없다며 바로 다시 고장이 날 수도 있고 먼 훗날 잘 사용하다가 고장이 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지금 상태는 정상이고 애초에 메인보드 쪽에 물이 들어간 것도 매우 미미한 양이었다고 했다. 일단은 안심해도 좋을 것 같다는 게 기사님의 소견이었다.
아무튼 뭐 잘 되었다. 마무리 어떻게 하지?
앞으로도 클라우드 서비스를 잘 이용하고, 물을 쏟았을 때는 침착하게 대처하자는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일단 헷갈리면 서비스센터가 답이다. 물 쏟았을 때도 일단 응급 처치가 끝나면 서비스센터에 전화할 걸 하는 생각을 했다. 응급 상황이고 다친 건 사람이나 맥북이나 비슷한 처지일 테니까? 병원이라고 생각하고 상황을 치환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