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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잡썰

버려질 것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무사파치 프로젝트

by 이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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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치에 대한 기억


친구의 부모님은 배추농사를 지으신다. 해마다 이맘때 즘이면 김장을 하기 위해 절임배추를 사러 찾아뵌다. 그럴 때마다 공장 한 구석에 쌓여있는 배추 무더기로 가셔서 큰 비닐에 성큼성큼 담아주셨다. 어차피 버리는 파치 가져가라고 하시면서.


어차피 버리는, 이라는 수식어는 꽤 슬픈 말이다.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상품의 외적인 규격을 만족시키지 못하니 목적을 잃어버렸고, 그래서 버려진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에게나 덤으로 주는 용도가 아무래도 그 파치의 가장 좋은 운명일 거다. 매년 우리 가족은 구매한 배추보다 더 많은 파치 덕분에 배추가 부족하지 않은 해를 보내고 있지만, 이걸 크게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나 역시 외적인 규격을 만족해야 상품을 사는 소비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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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파치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아는 분께서 이 파치에 대한 문제를 살피는 프로젝트를 하시겠다는 이야길 들었다. 이 분은 결혼하고 제주도의 자연에 반해 내려가 4년째 살고 계신 그분은 그래픽 디자이너로, 디자인으로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꿔보려고 하신다고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떠오른 기억이 맨 처음의 파치에 대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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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버려지는 것, 아는 사람 오면 좀 덤으로 줄만한 것, 이라는 생각이 바로 든 나는 필요한 인식의 개선이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어차피 버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그 버려지는 이유가 못생겼을 뿐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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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번듯한 마트의 진열대에 올라 빛깔 좋고 먹음직스러운 녀석들은 분명 사고 싶어 지게 만든다. 이걸 상품가치라고도 하고. 이 상품가치는 어쩌면 더욱 건강하고 생존에 유리하려면 좋은 것을 찾아 먹어야 한다는 수렵과 채집으로 생존해오던 조상부터 대대로 내려져오는, 어쩌면 유전적인 명령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 인식 개선 프로젝트는 본능 레벨과 맞서야 한다.


냉장고 속 파치


언젠가 사둔 지 너무 오래 지나 곰팡이가 피어버린 자몽을 보며 쪼그리고 앉아 한참 만지작 거린 일이 있었다. 버리긴 해야 하는데, 너도 이렇게 내 냉장고 속에서 이렇게 곰팡이가 피는 꿈을 꾸며 태어나진 않았을 텐데. 너에게도 삶이 있었다면 목적은 이게 아니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으로 한참 만지작거리며 자몽을 애도하다가 결국 버린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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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 버린 냉장고 속의 음식들. 이 마저도 파치라는, 파치는 굳이 태어나기를 어딘가 다른 좋은 것들과 다르게 태어난 것들도 말하지만, 냉장고 속에서 우리의 기억에 잘못된 한 켠으로 파치가 되어버리는 것들도 있다는 생각. 외적인 결함이 아닌, 어쩌면 우리 내적으로 만들어준 결함 역시 파치를 만드는 요소가 되는 게 아닌가 하고 인식을 건드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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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는 그런 부분도 건드린다. 만약 파치에 대한 게 겉모습이 아닌 인식의 문제라면 굳이 밭에서 버려지는 파치의 문제를 알리는 것보다 당장 우리 집 냉장고 속에서 버려질 날들만 기다리며 얼어있는 것들의 문제도 알아야 한다고. 그러면 자연스레 버려질 것들의 문제에 관심이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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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질 것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이 프로젝트에서 인식을 개선하고자 하는 부분인 가치에 대한 것을 꿈으로 치환하여 설명하고 있다. 파치들도 꿈이 있을 것이다 하는. 못생긴 파치가 가진 내면의 가치를, 파치도 꿈을 꾸고 있을 거라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어떤 감자는 감자 별을 찾아 떠나고 싶어 하고, 어떤 양파는 하늘을 날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동화같은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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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상을 동화처럼 풀어내어 귀엽고 예쁜 아트워크로 담아낸 프로젝트가 예쁘게 오픈되었다. 썸네일도 눈물 나게 해맑은 파치들이 모여 단체 셀카라도 찍은 것 같은 모습이다. 아무리 귀여워 보여도 어차피 버려질 것들의 모습이라면 저 미소 짓는 모습에 마냥 행복하게 공감할 수는 없다.


내가 버린 자몽은 어떤 꿈을 꾸고 있었을까. 친구 어머님이 담아주시다 남아 버려진 파치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었을까.


어차피 버려질, 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태어난 것들이 이런 시도로 아주 조금이라도 더 관심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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