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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게 자라거라
티라노사우르스야

강해 보이는 이름

by 이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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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라 친구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습니다. 쑥쑥 자라라는 의미로 쑥쑥이라는 이름도 붙었는데요. 쑥쑥이는 사실 친구가 튤립에 붙여줬던 이름인데 음. 사실 이 네 이름은 제가 붙인 것이 아닙니다. 이런 약해 보이는 이름을 주고 싶진 않았어요.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고 말을 꺼낸 지 10초가 채 되지 않아 이 말을 들은 이가 뚝딱 하사해주신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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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이런 이름들이 예정되어있었거든요. 한 친구만은 제 스타일의 이름을 사수했습니다. 솔직히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려면 이런 이름이 훌륭하지 않나요? 어머~ 아이가 티라노사우르스 같네요. 하면 건강하고 강하고 엄청 센 거잖아. 한 시대의 지상 생태계를 주름잡던 존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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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름은 다섯 형제 중 가장 약해 보이는 친구에게 주었습니다. 쑥쑥 자라서 티라노처럼 커다래지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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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친구들은 이렇게 이름을 지어줬고요. 저번에 물에 불려둔 씨앗들을 살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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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면 뭔가가 비집고 나오려는 시도가 보이시나요? 자꾸 물도 마르고 그래서 부어주고 하는데 이 녀석들이 씨앗 상태에서도 쑥쑥 먹고 크나 봅니다. 허 녀석들. 살아있다고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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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친구들이 살집을 마련해줄 겁니다. 티라노사우르스와 그의 네 형제들은 주신 분께서 한 화분에 하나씩, 단독주택처럼 소중히 심어주셨다면, 저는 저의 스타일이 있죠. 강하게 키우기 위한 뭐랄까. 일종의 훈련소 같은 느낌. 다섯 선배님들이 안락하게 단독주택에서 주거하신다면 이 수십 후배들은 한 공간에서 성장하며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고 해 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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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땅히 심을 곳이 없어서 큰 화분 하나를 우연히 찾아낸 것입니다. 어느 정도 자라면 밭으로 갈 거니까 어차피 비슷해요. 그냥 거쳐가는 게스트하우스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해봅시다.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우리모두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건데 잠시 거쳐가는 거처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아무튼 화분 바닥에 이렇게 플라스틱 망을 깔아줍니다. 물은 빠지되 흙은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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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질 좋은 마사토와 생명토를 배합합니다. 이 생명토가 기가 막힙니다. 저 하얀 알갱이가 전부 영양제예요. 한 덩이만 떼어다가 붙이면 돌 위에서도 꽃이 핍니다. 진짜예요. 우리 가게 오시면 보여드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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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명토 배합 흙을 화분에 담고 씨앗을 골고루 뿌려준 뒤 꾹꾹 눌러 심습니다. 그리고 물을 흠뻑 준 다음에 가라앉히는 작업을 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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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따뜻하니까 밖에서 해도 좀 보고 해가 지면 안에 들여놓을 거예요. 요즘 일교차가 심하니 감기를 조심해야 합니다. 화분 뒤에 보시면 수반도 있는데요, 놀라운 사실은 화분과 수반 모두 저희 가게에서 만들었다는 거죠.


요즘 수반 공장이 많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래서 수반 제작하는 곳 찾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홧김에 수반 제작하는 틀을 사다가 우리가 쓸 건 우리가 만들어버리자. 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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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안에 들여놓으면서 왜철쭉 선배님 보면서 무럭무럭 꿈을 키우라고 옆에 데려다 두었습니다. 이제 매일 아침 출근하면 물 줘야 하는 식구가 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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