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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목공예를 배워보자

아버지가 할때는 분명 쉬워보였는데

by 이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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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게에는 나무가 있습니다. 나무야 있겠지 그게 뭐 대단하냐 물으신다면 이걸로 목공을 하고 있다는 거겠지요. 아버지는 오랫동안 나무를 만져오셨습니다. 목수는 아니시고 돌을 위한 받침을 기가 막히게 만드시지요.


이걸 좌대라고 하는데요. 좌대 잘 짜는 사람은 많고 아버지가 그중에서 유독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가는 아니시지만 저희가 쓸 좌대만큼은 기가 막히고 빠르게 잘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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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 돌 좌대를 짜 보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제가 돌 주인이니까 한 번 짜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선택을 후회하게 되죠. 돌이 엄청나게 무겁고 크거든요. 거의 1톤 가까운...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한 500킬로 정도는 되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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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우리의 전기톱입니다. 이 녀석으로 적당히 나무를 잘라 돌 밑에 끼워 밑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돌이 그렇게 무거운데 어떻게 밑에 나무를 끼우냐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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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매달아서 쓰게 됩니다. 이렇게 보여도 이게 엄청난 건데요. 밑에 무쇠 철판이 어마어마한 무게로 수평을 잡아 밑을 받쳐주고 위에서는 움직도르래가 무게를 받아 아무리 무거운 돌이라고 쉽게 오르내릴 수 있게 해 주고 이 모든 걸 세 철기둥이 무게를 분산해서 지지해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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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서 일단은 따르래기라고 부르는데요. 상당히 과학적인 녀석입니다. 무슨무슨 원리가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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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이 오늘 좌대를 만들어줄 나무화석입니다. 꼭 용암이 폭발하는 것 같지 않나요? 저도 자꾸 보니 정들고 그래서 야금야금 화석을 제 걸로 만들고 있는데요. 이거는 정말 너무 마음에 들어요. 계절이 바뀌기 전에 카페 건물 안에 메인으로 장식해볼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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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또 다른 화석이 있는데요. 이것도 좌대를 짤 건데 이런 식으로 그라인더에 강철 솔 디스크를 달아서 변압기로 속도를 조절해가며 표면을 다듬어줘야 해요. 약한 부위도 떨어뜨리고 불순물도 빠르게 닦아줄 수 있는 좋은 도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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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밑에 아까 전기톱으로 자른 나무를 가져옵니다. 나무 두께만 해도 20cm를 훌쩍 넘기기 때문에 절대 혼자 작업 못해요. 나무만 대충 40킬로는 넘는 거 같습니다. 이걸 밑에 대보고 연필로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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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밑그림을 따라 이렇게 작은 라인을 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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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또 효자예요. 살짝 나와있는 저 작은 톱날이 미친듯한 회전으로 나무를 버터 파내듯이 파줍니다. 이게 소나무인데요. 파는 내내 피톤치드가 어마어마하게 나오더라고요. 전완근이 다 털려가는데 폐만큼은 살균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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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을 다 파주면 본격적으로 구덩이를 파야합니다. 돌이 안정적으로 박히려면 최소 10cm는 파내려 가야 해요. 그때 쓰는 공구들입니다. 끝에 달린 작은 톱날이 회오리 모양으로 박혀있어서 나무를 무자비하게 뚫어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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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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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정도 파낸 결과물입니다. 보이시나요? 제가 양팔을 바쳐 파낸 구덩이 가요. 사실 이거만 보면 뭔지 모르시겠죠? 저도 그랬어요. 이게 대단해 보이기는 하는데 나무가 아까운... 거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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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스트레스 풀리는 건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습니다. 나무를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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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을 어느 정도 잡았다 치면 이제 구경이 더 큰 형님을 모셔옵니다. 이 형님은 엄청난 구경으로 무자비하게 나무를 파헤쳐버릴 수 있어요. 앞에 도구들은 애들 장난 같은 느낌이죠. 저것들이 새총이라면 이 친구는 박격포입니다. 무자비하게 나무를 파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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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이게 사진으로 짠 하고 내려와서 쉬워 보이지 이쯤 되었을 때 사진 찍느라 핸드폰 드는데도 손이 덜덜 떨려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아직도 구덩이를 반밖에 안 팠다는 것이죠. 반이나 팠네 라는 생각은 이 장비를 안 들어본 자가 말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목이 덜 마른 사람이겠군요. 새삼 느끼는 건데 결핍과 고통을 느끼게 되면 마음에 풍요가 덜해지는 거군요. 구덩이를 파다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풍요는 평온에서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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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구덩이를 파고 나면 잘 맞나 한 번 대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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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안 맞으면 이제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조각도로 섬세하게 깎아내야 합니다. 나무는 단단하기 때문에 조각도를 대고 고무망치로 두드려야 해요. 조각도는 나름 칼이기 때문에 막 다루면 안 됩니다. 꼭 조심해야 해요. 장인의 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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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이 되어서야 구덩이를 완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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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손이 다 반 넘게 들어갈 정도로 팠어요.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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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정확하게 들어맞습니다. 좌대에 모양을 내서 깎기 전에 한 번 어울리나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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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좋습니다. 이건 이제 못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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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불규칙한 모양인데도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게 보이시나요?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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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구덩이에 먹지를 깔고 들었다 놨다 해봅니다. 이러는 이유는 간단한데요. 들어맞는 것처럼 보여도 힘을 받는 곳이 바닥이 아닌 벽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 받는 지점을 찾아서 깎아나가며 최대한 바닥면으로 무게가 쏠리게 만들어야 해요. 안 그러면 나무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났을 때 대미지가 누적되어 부서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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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까만 점이 보이시나요? 저 부분을 조금씩 깎아 지워나가며 들었다 놨다를 수차례 반복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힘 받는 면적과 지점이 넓어졌다 싶으면 그제야 구덩이가 완성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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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를 잘 파면 이렇게 끼우고 들어 올릴 때 같이 딸려옵니다. 엄청 잘 맞았다는 거래요. 나름 뿌듯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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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둬도 저는 이쁠 것 같은데 아버지께서 그건 네 세대에서 시도해 보라십니다. 지금은 아버지께 배우는 입장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좌대 모양을 따라가기로 합니다.


좌대는 일본으로 갈수록 나무가 작고 심플해지고, 중국으로 갈수록 크고 화려 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일본 좌대 스타일을 좀 더 선호하시는 편이십니다. 나무가 시선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지론을 가지고 계시죠. 그래서 최대한 심플하고 단아하게 짜는 편이십니다. 이렇게 밑그림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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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톱으로 사정없이 깎아버리셨죠.


이 좌대는 70% 정도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아버지께서 모양 내고 광을 내고 사포로 다듬고 하는 지루하지만 퀄리티를 위한 오랜 반복 작업이 남았습니다. 완성되면 자랑할 겸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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