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도 고양이 Mar 13. 2017

친구 장가보내고 왔습니다.

자식새끼 장가를 보내도 이거보다는 덜 힘들겠어요.

3월 11일, 봄 햇볕이 따스한 어느 날, 내 오랜 친구 하나가 결혼을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가진 재주가 많지는 않지만, 그나마 바쳐서 친구의 결혼식을 멋지게 만들어주겠노라 하였고 이로 인해 개고생이 시작되었다.


청첩장과 식권 식전영상, 갑작스럽게 만들게 된 부모님 감사 영상까지. 며칠 밤을 열심히 작업하며 일했지만 사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친구 놈은 많이 미안해했지만 나는 그게 즐거웠고 그렇게 사회까지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작업하면서 고양이가 정말 많이 방해했다.


고양이가 있으니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고양이를 그 앞에서 내려놓는다.'가 선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커피를 내려 마시려고 해도 '고양이를 커피머신 앞에서 떼어놓는다.'가 선행되어야 한다. 서랍이나 옷장을 열게 되면 '고양이를 꺼낸다.'가 중간에 과정으로 추가된다.


옷을 갈아입는다고 해보자.


고양이가 어디 있나 둘러본다. - 옷장을 연다. - 고양이가 아까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한다. - 없는 걸 확인하고 옷장 안을 살펴본다. - 고양이를 발견한다. - 지금 꺼내려고 하면 옷을 붙잡을 테니 일단 옷을 고른다. - 옷을 꺼내고 고양이를 꺼내려고 1차 시도를 해본다. - 옷이 상할 것 같아 이내 포기한다. - 2차 시도로 고양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흔들어본다. - 고양이가 반응을 보이면 조금 더 격하게 흔들어 본다. - 고양이가 나온다. - 옷장문을 잽싸게 닫는다.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고양이는 내가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귀신같이 달려와 무릎에 매달려서 '아웅- 아웅-'하고 우는데 무시했다간 잘근잘근 공격을 받을 수 있으므로 짧게라도 만져주어야 한다. 손을 뻗으면 그 자리에서 '아웅!' 하고 짧게 울면서 발랑 뒤집어지는데 그러면 배를 만져주면 골골 거리면서 얌전해진다. 그러면 나는 5분 정도 더 작업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 사랑스러운 방해꾼 때문에 짧은 작업도 참 오래 걸린다. 하지만 사랑스러워서 어찌할 수가 없다. 안아주고 놀아주고 달래주고 짧게 작업하다가 고양이가 지쳐 자러 갈 때면 기회다! 하며 눈에 불을 켜고 작업을 빨리 해야 한다. 언제 일어나서 아웅 아웅 할지 모르니까.


사실 내가 많이 고생해도 되니까 자주 와서 나에게 놀아달라고 보채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다.



작가의 이전글 무슨 일이 있어도 너랑 같이 살고 말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