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도 고양이 Mar 14. 2017

어깨 냥이

랑이는 겁이 많은 고양이다. 생긴 건 아주 날렵하고 길쭉길쭉해서 꼭 표범 같기도 하고, 팔딱팔딱 뛰어다니는 몸놀림을 보면 자기가 맹수인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겁이 많은 고양이이다. 꼭 안고 집 밖을 나오면 발톱을 잔뜩 세우고 덜덜덜 떨면서 어깨에 몸을 착 달라 붙인다. 꼬리부터 턱까지 잘 달라붙어있는 이 고양이는 양손을 떼어도 무슨 액세서리처럼 붙어있어서 그대로 걸어본 적도 있다.


'너는 산책을 싫어하는구나.'


주제에 호기심은 많아서 차에라도 태우면 무릎 위에 식빵을 하고 얌전히 앉아 있다가도 냉큼 어깨 위로 올라와 배를 착 붙이고 내 왼쪽에 있는 창문으로 풍경을 두리번두리번 구경하고는 했다. 그래서 예방접종을 해야 하는 어린 랑이는 데려가기가 아주 편했다.


'왜 아가 없이 혼자 오시나 했어요.' 하고 검은 코트라도 입고 가면 병원 선생님들이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덩치는 작은 게 발톱 힘은 얼마나 센지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 쉽게 어깨에서 떼어내지를 못했다. 결국 선생님 두 분이 오셔서 나를 사이에 두고 발 하나 하나르 떼어가며 붙잡아야 어깨에서 떨어졌다. 나는 '이런 고양이여서 제가 죄송해요.' 하고 말씀드렸다.


접종을 하러 들어가면 랑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체중계에서 내려와 바들바들 떨면서 엉금엉금 책상 위를 돌아다녔다. 나는 열심히 육묘에 대한 주의사항을 들으면서도 고양이가 이래도 되나 싶어서 가만히 쳐다보았다.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고양이가 책상 위 티슈박스를 발견하고 앞발을 잽싸게 뻗었다. 선생님의 손이 더 빨랐다. 잽싸게 앞을 가로막고 랑이를 체중계 위에 올려놓았다.


'고양이가 활발하네요.'

'다른 고양이들은 병원에 오면 무서워서 움직이지도 못해요.'


랑이는 '으응' 하고 작게 소리를 내고 체중계 위에 앉았다. 나는 고양이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열심히 물어보는데 랑이가 다시 엉금엉금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꼬리를 보니 아직도 무서운지 바들바들 떠는 것 같기도 한데 이번에는 선생님 가운 자락을 잡으려고 앞발을 들었다. 이번에는 내가 더 빨랐다. 잽싸게 고양이를 낚아채어 안아 들었다. 랑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어깨에 착 달라붙었다.


'보기 드문 어깨 냥이네요.' 하고 선생님이 우습다는 듯이 마구 웃으셨다.




지금도 가끔 가슴 줄을 하고 산책을 나갈 때면 어깨에 착 달라붙어있어서 아주 편하다. 어디 벤치에 앉아서 무릎에라도 내려놓으려고 하면 앞발을 번쩍 들고 팔딱 뛰어서 어깨에 올라오고는 한다.


특히 양치질을 할 때면 랑이는 내 발치로 와서 나를 올려다보며 '아앙~ 아앙~' 하고 길게 운다. 그런 고양이를 안아 들면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어깨 위로 올라와서 균형을 잡고 길게 엎드린다. 어릴 때는 한쪽 어깨에 랑이 몸 전체가 다 올라왔지만 지금은 머리가 왼쪽 어깨에 있으면 엉덩이는 오른쪽 어깨까지 와야 편안해 보이는 자세가 된다. 덕분에 양치질하는 동안 목이 따뜻하고 보들보들해서 기분이 참 좋다.




작가의 이전글 친구 장가보내고 왔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