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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Mar 02. 2021

귀찮아서 아무거나 넣었더니 안 돼, 이거 어떻게 해?

집에서 아침에 엄마가 들고 오는 것 중에 태반은 저런 것이다. 

이메일 쓰지도 않는데 이메일 주소 넣으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넣었더니 문제가 생겼다.  

반짝아 뭐가 안된다고 문자가 왔는데 뭐라는지 모르겠다. 


집에서 살고 집에서 일하고 집에서 먹고자는 내가 나쁘다. 

덜 깬 머리로 아침도 먹기 전에 엄마 자신도 뭐가 뭔지 모르는 문제를 해결하자면 

일단 컴퓨터에 보안프로그램 다섯개를 깔고 

엄마가 기억하지 못하는 비밀번호를 찾는 긴 여행을 떠나야 한다. 

엄마는 나중에 해도 된다고 하는데 나는 할 일을 미래 어디에 박아두는 것을 

굉장히 거슬려 한다. 나는 모든 일을 빨리 해치우고 싶다. 

하지만 애초에 왜 메일 주소 같은 걸 아무렇게나 적었는지 나는 모르는데다, 

그쪽에서 온 매크로 답변은 지난 세기 이후로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곧이 곧대로 하려다가는 머리가 터진다. 그들이 받으라는 어플 이름부터 잘못 표기되어 있는데다

엄마는 한번 설정한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고 (간편 비밀번호는 이럴 때 쓸 수 없게 되어있고) 

골백번 해서 외운 엄마의 주민번호와 핸드폰 인증의 산을 넘어서 

고작 이메일 주소를 올바르게 바꾸는 일에 30분 넘게 쓰는 것이다. 

 

최소한 그런 요청은 오전 열한 시 이후에 주었으면 좋겠지만 

괜히 지금 가서 이야기 하면 또 치사하고 더러워서 너한테 안 시킨다고 짜증나게 할 것이고 (이 안 시킨다는 이야기도 한두번 들은 것 같지 않은데, 생각해보니까) 

그래서 그냥 참는다. 화내기 귀찮고 나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침 루틴이 있는데 

이런 거에 짜증내느라 루틴을 망치는 것은 더더욱 싫으니까....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집에 인터넷이 생겼으니, 

그때 이미 엄마는 거의 30대 후반이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거나 거래를 할 때 이 정보가 어디까지 필요한지 

쟤네가 괜히 달라고 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없다. 

혹시 개인정보가 몽창 도용 당해서 스팸을 잔뜩 받을까봐

핸드폰 번호나 이메일을 가짜로 넣고 

나중에 문제가 되면 나는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한참 찾게 된다. 

인터넷을 쓰긴 하지만 이게 왜 되는건지 어떻게 되는건지 

전혀 모르고, 가끔 나오는 스미싱 기사나 인터넷 사기 기사는

엄마를 더 불안하게 한다. 지난 번 직장에서는 회사 대표가 

자기가 컴퓨터 공학과를 나왔다고 해서 

당신들 카카오톡을 전부 해킹할 수 있다고 위협을 하는 바람에 

거기 사람들은 대표 욕을 전부 문자로 했단다.......

회사 컴퓨터에 카카오톡 비밀번호를 저장하고 쓰는게 아니라면 

그런 일은 안 일어난다고 했지만 엄마한테 인터넷과 컴퓨터가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었다. 

엄마.. 나도 컴공 나왔어 거기 그런 데 아냐.... 학부에서 그런 건 못 배워... 

엄마한테는 좀, 자기가 잘 못 다루는 마법 같은 건가 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치킨 기프티콘이 배송 상품인지 

오늘 시키면 오늘 오는 것인지 묻고 갔다(....) 

아주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매사 속이 터진다. 

이쯤되면 속터지다가도 말게 된다 너무나 이해의 영역을 저 멀리 초과하는 바람에...


가끔 어릴 때 엄마가 신발끈을 골백번 묶어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릴 때 서툰 나를 길러준 것은 고맙지만 그 시절 육아는 오은영 박사님이 하라는 것처럼 

소리를 안 지르고 짜증을 안 내고 인내심 있게.. 뭐 그런 건 솔직히 아니지 않았나... 

있는대로 짜증내고 소리지르고 쓸모없는 것이라고 욕도 하고 

미친년 육시랄 꼴값을 떨고 자빠졌다부터 시작해서 

애비애미 등에 붙어서 골수를 빨아먹는 마귀새끼라는 소리도 들어보고....  

어린애니까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해서 욕도 하고... 

짜증이 나니까 짜증을 내고 때리고 그랬지... 아니 잘못해서 손바닥 맞는 거 말고 외출할 때 

애기가 느적거리는 거 짜증나니까 손바닥으로 때리면서 빨리 빨리 하라고 짜증내는거 

다 그렇잖아... 뭐 이제와서 그런 게 서운하다는 게 아니라

어차피 세상에 무한한 사랑으로 날 길러준 부모와 보살같이 효도하는 자식 같은 건 없다는 것이다.

그냥... 서로 참는거지 아니 뭐 어쩔거야... 

아무튼 엄마한테 인터넷은 어차피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마법일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부모에 대한 애착을 놓고 자애수행을 하는 것 정도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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