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반짝 Apr 15. 2021

엄마가 노인이라는 사실.

왜 이렇게 답답하지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난 언제나 엄마가 4, 50대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아직 50대지만) 아무튼 엄마는 노인인 것이다. 도대체 왜 저러지, 왜 설명을 못알아듣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다가 깨달았다. 엄마는 옛날 사람이라는 것을. 세상 모든 일에 대해서 왜 이렇게 이상하게 잘못 알고 있지? 8년만에 돌아온 집에서 엄마의 말도 행동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답답한 날들이 이어지다가 깨달았다. 


10대 기준에서, 나는 이미 틀딱이다. 나는 으-른이 되어가고 엄마는 늙어간다. 스마트폰을 들고 오는 엄마의 요구사항은 점점 부정확해진다. 누가 뭘 하라고 했다는데, 엄마의 설명으로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듣고 왔는지 스마트폰으로 뭘 해야 하는지 알기가 어렵다. 애초에 그걸 찰떡같이 알아들었으면 나한테 안 들고 왔겠지. 세상을 보는 시각도 너무 다르다. 


늘 먹는 닭가슴살을 엄마가 사다주겠다고 해서 고맙게 생각을 했는데, 냉장 닭가슴살을 3kg를 사왔다. 막연히 냉장이 더 신선하니까, 라고 한건데 3kg면 어차피 냉동실에 얼려야 한다. 그러니 나는 당연히 개별 급속냉동이 좋고 정육점에서도 냉동 코너에서 그것을 판다. 그러니까 애초에 '신선한 닭가슴살'이라고 하면 나는 공장에서 깨끗하게 발려서 전처리가 끝난 제품이 '신선한 제품'인거고, 엄마는 농장에서 받아왔다고 하는 냉장제품이 신선한 제품인 것이다. 


편의점 샌드위치든 랩노쉬든 밀스든 나는 탄단지가 맞는 음식이 건강한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엄마는 집밥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각의 차이는 물건을 살 때 뉴스를 볼 때 하다못해 이웃의 소식을 들을 때 조차도 차이가 있다. 스물 넷에 결혼한 엄마 친구 딸의 소식을 듣고 내가 느끼는 것은 (그러니까, 본능적인 단위에서) 공포감이다. 애가 생겼다고? 직업이 없어? ... 어어... 결혼 축하한다고 전해줘... 물론 타인에게는 타인의 시각이 있으니 그녀가 행복할지 어떨지 나는 모르는 일이지만, 아무튼 내 사고방식에서 그것은 일종의 위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엄마는 정말로 결혼을 축하할 수 있다. 나는 엄마의 초등학교 동창의 동생이라고 말하면 남 내지는 사기꾼처럼 생각하지만, 엄마는 내가 왜 사촌보다 친구들을 더 믿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알아서 하겠지 하는 일들은 내가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있는데, 또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어떻게 풀려가기도 한다. 나와 엄마는 너무나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아마 이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질 것이지만, 아마 경제적 상황상 나는 필연적으로 거리 두기를 배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같이는 살지만 관여하지 않는 법과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라는 일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다. 


... 하지만 여전히 자꾸 까먹는다. 노인이구나. 어째서?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게. 아니, 당연한건데. 하지만 어째서.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한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