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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Feb 21. 2019

이력서에 뭔가 보여주려고

새벽까지 노력했으나 결과물은 대재앙

어제 저는 한 축산관련 업체에 마케터로 지원을 하려고 새벽까지 이력서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쪽은 아직 온라인 마케팅을 하지 않은 상태였고, 그래서 뭔가 이런 점이 인상 깊었고 이런 점이 아쉽기 때문에 내가 간다면 무엇무엇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글 잘 쓰는 사람을 원한다고 했고, 마케팅에서 글쓰기는 장문으로 길게 쓰는 것 뿐만이 아니라 간결하고 좋은 문구를 만들수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그걸 보여주려고, 페이스북 게시물 샘플을 만들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들어갈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일단... 돼지의 누끼를 땄죠. 

포토샵이 없어서 누끼따는 사이트를 좀 이용했어요 픽슬러라는 웹 편집 툴도요. 제가 좀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면 여기서 벌써 눈치를 챘을거예요 이건... 이건 뭔가 아닐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저는 보는 눈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음. 좀 더 가장자리를 다듬어야겠군!' 정도의 생각밖에 못했습니다. 그리고 일단 돼지니까 배경에 분홍색을 얹어봤죠. 사이즈는 1280x630으로 하고요. 

야 이건... 

여기서 저는 위기감이 듭니다. 글씨 안 써도 알아요 색 붓자마자! 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야. 그래서 황급히 웹을 뒤져서 그럴듯한 분홍색을 찾아서 스포이드를 갖다 찍었습니다. 그리고 위에 작은 한줄과 제품명 들어갈 공간 그리고 로고도 넣었어요. 고작 이걸 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들었습니다. 

... 돼지 머리때문일거야. 그래서 뭔가...장난처럼 보이는게 아닐까. 

저는 이제 돼지 머리가 문제라고 믿었습니다. 색은 뭐 과히 나쁘지 않은 것 같았어요. 왜냐면 색은 어디서 뽑아온 거였으니까요. 내가 한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또 다른, 행복한 돼지를 찾아서 열심히 누끼를 따봅니다.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래저래 조정도 해보고 정 안되면 그냥 픽슬러에서 살살 지우개로 지우고 너무 많이 지웠다 싶으면 도로 채워가면서... 

픽사베이에서 이 돼지를 찾아다가 
아.... 

그리고 깨달았어요. 아니 저쪽에서는 분명히 '글 잘 쓰는 사람'을 원한다고 했고 나도 '글 잘 쓰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고 있는 중인데 왜... 내가 이 짓을 하고 있지... 예시 이미지에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제가 이걸 깨달았을 때 이미 새벽 네시였습니다. 자소서는 반페이지를 써놓고, 왜? 대체 왜? 


게다가 저처럼 시각 효과에 전혀 문외한인 자가 남들 한 거 보고 비슷하게 뽑아낼 수 있으면 세상에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대체 왜 있겠어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 디자이너에 지원하는 중이 아니고... 왜 이렇게 된 거지... 

사람이 이상한데 꽂혀서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쵸... 아무튼 저는 새벽 네시에 재앙같은 이미지를 두 장이나 맞닥뜨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답니다. 자소서도 마저 쓰고, 페이스북 게시글 샘플은 그냥 예쁜 돼지 이미지에 손 안대고 넣는 것으로 하려고 합니다. 왜냐면 저는 디자이너에 지원하는 게 아니고, 글 잘 쓰는 걸 보여주려다가 저의 엉망진창 미감까지 들통날 필요는 없으니까요!


ps. 이거 하느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승헌군 라방을 놓쳤어요...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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