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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Apr 06. 2019

나는 할 일을 해

2019년 3월 21일 목요일 

오늘은 드물게 불행한 날이다. 너무 불행한 나머지 소주가 아니라 와인을 마시고 있다. 1만2천원짜리 싸구려 와인에, 와인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분명 질색할만한 끈적한 단맛으로 채워져 있지만 소주보다는 나을 것이다. 가장 싼 술을 마시고 아무렇게나 취해서 방바닥을 뒹굴기에는 지나치게 불행하다. 불행은 슬프고 너무 바쁘다는 소리이다. 


불행은 가난과 슬픔의 조합이고, 가난은 노동을 멈출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 나는 오늘 바쁨과 슬픔 두 가지를 한번에 해결해야 한다. 실업급여를 받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실업급여는, 간단하게 말하면 구직의사가 있는 실직자에게 돈을 주는 제도이다. 나는 2월 20일자로 공식적으로 퇴사하였고, 질병으로 인한 퇴사를 이유로 실업급여를 신청하려고 했으나 8주 이상의 치료기간과 이전 회사의 협조가 필요했다. 이전 회사의 대표가 어디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대표는 우리 회사엔 출근하지 않았고 자기 직업이 따로 있는데, 나는 대표가 일하고 있다고 말한 지역의 모든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그녀의 소재를 확인했으나 찾지 못했고, 흥신소에 전화를 했더니 그 정보로는 찾는데 45만원이 든다고 해서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질병 퇴사 확인서’를 받을 수 없기도 하고, 입원을 포함한 내 치료 기간은 한달이 조금 넘는 기간이라 8주에는 미치지 못했다. 나는 담당자 앞에서 반은 고의적으로 반은 진심으로 눈물을 흘렸으나 담당자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나는 어제 문자와 메일로 지난주에 면접을 본 한 회사에게서 면접 탈락 결과와, 과제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한 회사에게서 면접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내가 형편 없는 과제를 제출했다는 결과를 받은터라(실제로 그렇게는 써있지 않았다. 다만 면접을 볼 수 없다고 써 있었고, 나는 그렇게 읽었다.) 심신이 아주 지쳐있었다. 그 상황에서 실업급여 신청 자격이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내 머릿속에 떠오른 첫번째 생각은, 


‘와, 나는 정말 멍청하구나.’


였다. 나는 어릴때부터 내게 일어나는 모든 불행은 다 내 탓이라고 배워왔다. 비가 오는 날에 차가 늦어 지각을 한다면? 평소보다 10분 일찍 나오지 않은 내 탓이다. 아파서 드러누우면? 건강관리를 못한 내 탓이다. 지갑을 잃어버리면? 부주의한 내 탓이다. 보이스 피싱을 당하거나 노동 착취를 당하는 이유도 아마 내가 멍청한 탓이다. 나에게 닥친 모든 불행은 나의 탓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도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나는 쉽게 생각한다. 


‘와, 나는 정말 멍청하구나. 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실업급여를 못 받은 이유는, 내 ‘머리로 생각하기에는’ 아마 우리 나라의 복지 제도가 노동자를 게으르고 의욕 및 자기 계발에 대한 욕구가 없어서 그냥 돈을 주면 술이나 흥청망청 마시고 자빠져 버릴 것이라고 가정했기 때문이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것은 나의 멍청함 탓이었다. 내가 무능한 탓에 그런 회사에 취업한 것이며, 내가 건강관리를 못 해서 병원에 입원을 한 탓이었다. 

그래서 나는 울었다. 스스로가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고용센터의 담당자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고, 나를 도와주려고 했지만 관련 규정은 그렇게 되어있지 않았다. 안경을 쓴, 냉정한 인상의 담당자의 곤란하고 안타까운 표정 때문에 나는 그에게 ‘오늘의 슬픈 일’이 된 기분이 들어서 약간은 미안해졌다. 나는 질질 울면서 센터를 나왔고, 그 상태로 센터 인근의 분식집에서 돈가스와 떡볶이와 장조림 버터 비빔밥을 시켜 절반정도 먹었다. 그리고 버블티 가게에 들어가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 내탓이지. 그런 회사 간 거 내가 무능해서고 아팠던 건 내가 나대서임 ㅋㅋㅋㅋ]

[그건 사회와 환경의 탓이지.....

건강관리 못해서는 이상한 말임...

사람은 그냥 가끔씩 아프고 병은 랜덤이다

유전이거나..

그건 누구의 책임이 아님..]

[내게 일어난 불행이 다 내 책임이 아니라니 너무 못 믿겠다

다 내탓같은데]

[응 사회학적으로 인간은 자기가 속한 사회적 상황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행의 대부분은 내가 처한 사회적 상황에서 오지...

그리고 몸과 관련된 문제는 대부분 유전탓이야

그렇게 치면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불행은 거의 안 남아

내가 고의로 저지르거나 정말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한 게 아니라면

또는 뭐 불법을 저지른게 아니라면

인간이 책임을 질 수 있는 영역은 거의 없다]


내 친구는 사회학을 전공했고, 공중보건에도 관심이 많았으므로, 나는 친구가 하는 말이 분명 이론적으로 맞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멍청하고, 무능하고, 못나서 이 모든 일들을 겪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13살때 아빠가 우리 가족 모두 대전으로 이사가야 한다고 했을 때 서울에 남겠다고 발버둥 쳤다면, 지금쯤 월세 때문에 고통 받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다못해 정자 혹은 수정란 시절에 생존에 실패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버블티를 마시면서 어떻게든 기운을 내려고 애썼다. 애초에 기운을 내려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많은 지방과 탄수화물을 입에 우겨넣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소진되었고, 버블티를 다 마실 때쯤에는 ‘이 불행이 나의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불행이 환경의 영향이라면, 그것이 내 탓이 아니라면, 나는 거기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인생을 운에 내맡기는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일단 집에 가서 불행에 잠겨 있으려고 버블티 가게를 나왔다. 밖은 추웠고, 나는 배터리가 없었다. 핸드폰 지도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버스 정류장을 찾는데 벌벌 떨면서 십분을 소비했고, 그 역시 내가 멍청한 탓이라고 여겼다. 집에 오는 길에는 역시 소주를 두 병쯤 사서 들이키자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면 정신이 좀 멍해지고 머리가 아주 아프고, 술을 마신 자신을 원망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생각을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버스에 앉으니 오늘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써야 할 단편 소설이 두 건이나 있고, 이번 달 안으로 완결을 내야 하는 장편이 있었다. 면접에 떨어졌기 때문에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작성을 다시 해야 했고, 방송대 강의를 들어야 했다. 소주를 마실 수가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걷자 우리 집 맞은편에 있는 주류 백화점이 보였다. 바깥에 내놓은 싸구려 와인이 박스에 담겨있었다. 나는 그 중 제일 달아보이는 것을 골랐다. 나는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적절한 알콜로 기분을 낫게 하면서, 동시에 할 일을 해야 했다. 죽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와인을 들고 계산을 하러 가게에 들어가자, 내가 좋아하는 위스키들이 진열된 것이 보였다. 와인은 12000원, 아드벡은 107000원. 나는 당장은 쓸 카드가 있어서, 아드벡 한 병을 간절히 사고 싶었다. 아드벡을 마시면, 기분은 확실히 좋을 것이다. 집에는 랍상소총이 있고, 랍상소총에 아드벡을 섞어 마시면 특유의 볏짚 같은 냄새, 따뜻한 차의 온기가 내게서 불행을 확실하게 지워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드벡을 미루었다. 당장 월세 낼 돈도 없는데 그것을 사는 것이 ‘진짜로 멍청한 일’ 같았기 때문도 있지만, 문득 ‘취업하면 축하하는 의미로 아드벡을 사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진심으로 불행에 스스로를 처넣고 뒹굴기에는, 진심으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스스로를 포기할 수도 없고, 어쩐지 내가 잘 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완전히 소각시킬 수도 없다. 그게 없다면 아마도 진짜로 죽을지 모른다. 


옆에는 빈 와인병이 있고, 나는 할 일들을 했다. 그 감각으로 버티고 있다. 나는 해야 할 일을 해. 나는 기능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과 변수 속에서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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