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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Apr 06. 2019

사실 그 사이 면접을 보았었지요.

맨날 이력서만 쓰는 것 같지만, 사실 두 번 면접을 보기는 봤다. 서류 통과를 하고 과제를 받기도 했다. 이력서를 지금까지 아홉군데 냈고 그 중 세 군데에서 연락이 왔으니 통과율은 30%. 나쁘지 않다! 취준생 서류 합격률은 11.5%라고 하니까, 나는 꽤 잘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러고 있다는 건 결국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지난주, 나는 메일 서류 합격 메일 두 통을 한시간 간격으로 받고 뒤집어지게 기뻤다. 마침 친구들과 모여 노는 자리였으므로 실컷 축하도 받았다. 그리고 면접 날, 평소에 안 하던 화장을 하고 굽 있는 워커를 신고 까만색 원피스를 입었다. 결혼 장례식 면접까지 커버되는 그런 원피스. 그리고 강남까지 갔다. 

내가 23살부터 서울에 올라와 강남에 간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마침 지하철에는 강남 스캔들이라는 드라마 광고가 걸려있었고, 나는 ‘강남은 대체 뭘까…드라마 제목이 신촌 스캔들이었으면 덜 흥미로웠을텐데, 왜 그럴까…’ 같은 생각을 하면서 면접 장소에 갔다. 건물은 반짝반짝하고 컸고, 라운지에서는 커피와 시리얼이 무료 제공 되고 있었다. 

사원증을 건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도 그 일원이 되고 싶었다. 매일 30분 더 일찍 일어나서 화장을 하고 출근을 해도 괜찮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읽었던 자기계발서에 나온 것처럼, 브라도 꼬박꼬박 입고 다닐 자신이 있었다. 늘 양말을 어디 두었는지 몰라서 맨발로 운동화를 구겨신고 다니지만, 양말도 잘 신고 운동화 아니라 단화도 신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사람들은 어쩐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인상이 괜히 나랑 잘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대표와 면접을 보았다. 


“사실은 음.. 이력서를 보면 저희가 자주 받을 수 있는…? 그런 이력은 아니에요. 되게 특이한데… 뭐 하려고 하셨었어요?”


대표는 이력에 대한 관심을 무례하게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은 말투로 물었다. 나로서는 그 부분에 설명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안 해봤다. 공대를 다니다가 적성에 안 맞아서 예대를 갔다가 … 아, 거기를 왜 때려쳤는지는 모르겠구나. 인생에 방황이라고 부를 만한 시기가 따로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그냥 먹고 살기 바쁜 사람이었고, 글을 쓰고 싶었다. 


“공대를 갔다가 글을 쓰려고 자퇴를 하고, 예대를 갔는데 일을 하게 되고 사실 별로 좋지 않아서 그만두게 되었다가… 먹고 살려고 일을 하다가…”

“음, 그러니까 뭘 하려고 하셨었어요?”

“아. 웹툰이요. 근데 사업자들이 어설프게 플랫폼 진입해서 다들 망했어요.”

“아하. 네.”


어떤 사람은 인생을 꽉 채워서 살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취업 준비를 하면서 ‘공백기’라는 말을 처음 알았다. 겨울잠을 자거나, 어디 냉동되었다 온 것도 아닌데 어째서 공백이란 말인가? 나는 계속 존재해 왔는데.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백이 6개월 있다, 1년 있다 같은 말을 하면서 걱정하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공백기가 무슨 말인지 잘 모르지만, 최소한 내게는 '이력서에 다 쓰기엔 너무 많은 일을 자잘하게 한 시기’이다. 그 많은 아르바이트며 프리랜서 일, 사기당한 이야기, 준비하다 엎어진 일들에 대해서 나는 뭐라고 쓸 말이 없다. 나는 웹툰 스토리 작가로 데뷔 할 기회가 세 번이 있었으나, 세 번 모두 연재 직전 회사가 망하거나 편집자가 도망을 가거나, 아이디어를 빼앗기고 방출되었다. 면접에서도 여기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것들을 너무 길지 않게 언급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력서에 동의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집단과는 일할 수 없다고 썼는데. 저희 회사의 동의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음. 이건 사실 예상한 질문이 아니었다. 왜냐면 그런 생각을 안 해서 지원한 것이었으니까. 면접은 이런 점이 무섭다. 안 생각해본 것에 대해서 휙 찔러 들어온다. 


“동의할 수 없는 가치는 아니고, 어떤 문제 의식이 있는 점이 있는데… 그건 이 회사 밖에 있어요. 사람들이 이 회사의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상황은 문제일 수 있어요. 하지만 좋고 나쁨에 관련 없이 그건 존재하는 현상이고, 제가 여기 지원한 것은 회사가 그것을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대표는 나머지 묻고 싶은 것들은 이력서에 내가 다 썼다고, 금요일까지 연락을 준다고 하고 면접을 끝냈다. 그러니까 결국 질문은 두 개였다. 나는 더 보여줄 것이 많아서 안달복달 하고 있었지만, 면접은 거기서 끝이었다. ‘필요한 건 내가 이미 다 지원서에 썼다.’ 그건 좋은 상황인가? 아니면 내가 너무 솔직하게 모든 것을 다 써버린 걸까? 하지만, 최소한 나는 말귀를 알아 들었다는 것이다. 제발 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높이 평가해라! 

금요일에 주겠다던 발표는 그 다음주 수요일로 미뤄졌다. 나는 어떤 슈퍼 훌륭한 지원자의 존재를 예감할 수 있었다. 내 발표를 미루고, 더 보고 싶은 누군가. 나보다 그 일에 더 적합한 누군가. 어느 정도 예상한대로, 나는 떨어졌다.

하지만 예상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틀 정도 밥을 먹다가도 길을 가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아니, 왜!?” 라고 외쳤다. 내가 이렇게 잘났는데! 내가 이렇게 똑똑한데! 내가 이렇게 글을 잘 쓰는데 대체 왜! 뭐 때문에! (아마도 이래서일까)

하지만 사실, 떨어지는 것도 꽤 익숙해진다. 일일이 그것으로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이것도 저것도 잘못한 선택이었다고 엑스자 치지 않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일, 만화 한다고 쏟은 시간, 잘못 만난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면접에서 했던 말투나 손짓 하나하나에 그 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데굴데굴 구르지 않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영역의 일이 꼭 재앙으로 가득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할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인생에는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고 그게 꼭 나쁜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내가 겪는 모든 나쁜 일이 다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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