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나는 뭐 하고 살았을까.
먼저, 4,50에 들어도 무례한 말이지만 내가 저 얘길 들었을 당시 나는 26,7세였고 그 나이는 저런 말을 듣기에 너무 어리며, 저런 말을 한 사람이 나쁘단 것을 명확히 땅땅 박아놓고 시작한다.
회사는 내가 지금 처음 다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구직 활동을 그 전에 한 번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여러가지 아르바이트 및 기타 임시직이 있었고, 사실 활동하던 분야에서 회사 안에 들어가 업무상 저작물을 만들면서 따박따박 월급을 받으려는 시도도 몇 번을 해 봤다. 게임회사도 들어가려고 해 보았다. 어찌어찌해서 서류를 통과하여 면접까지 가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꼭 나오는 질문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너 뭐했냐는 질문이었다.
"이 나이 먹도록 뭐 하고 사셨어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나이 먹도록 뭐 하고 살았는지도 모를 사람'이라고 생각 했으면 뭐 때문에 부르신거예요...?
그래 뭐. 그야 학교는 두 번이나 자퇴 했고 길게 한 일 없으며 들어본 작업물을 낸 적도 없다. 하지만 내가 정말 불성실하게 살았는가? 그렇지 않다. 나는 열심히 살았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남의 시선'에 굉장히 초점을 맞춘다. 네가 열심히 산 것을 부정하지 않겠으나 불성실하게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며 그것은 어쩔 수 없다. 네가 서류로 나타낼 수 없는 일들을 이것저것 해 온 것은 너의 잘못된 선택이었으며, 그 역시 네 선택이니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 너는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았느냐, 남들은 좋아서 시험을 준비하고 이력서에 한줄 한줄 채워넣을 스펙을 만들었겠느냐.
내가 이 나이 먹게 창작만 생각했던 결과로 당신은 이 업무를 준비한 시간도 짧고 경력도 없고 이 업무를 맡기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니 채용이 어렵겠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타당할 수도 있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나이 먹도록 뭐 하고 사셨어요?"
는 제대로 된 질문도 아닐뿐더러 그런 이야기 들어야 할 이유도 없다. 게다가 나는 지금 29세니까 당시엔 26, 27세였다. 26살에 남들처럼 살아본 적이 없어서 남들이 뭐 하고 사는지는 잘 몰랐는데, 다들 취준 취준 노래를 하니까 나는 남들은 26세면 토익도 900넘기고 업무 관련 자격증도 두 세개는 있고 공모전이나 무슨 대회 수상 경력도 갖추고 관련 업무 인턴도 한 줄 알았다! 남자애들이 군대 다녀오면 여자애들은 대리 달고 있다고 해서 진짜 그런 줄 알았다! 대학을 스트레이트로 졸업해서 23,4에 취업해서 26,7세면 경력자인줄 알았다!!!
아니잖아!!!
그렇다고 내가 뭐가 뿅 생기거나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서류화 할 수 없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 나이 먹도록 뭐했냐니요.
창작을 열심히 했습니다.
한 3년 노동착취 당하면서 세월을 날렸고요.
데뷔 직전에 업체가 망했고요.
그래서 좀 더 열심히 해 보았습니다.
공부도 이것저것 했고요.
도움이 될 것 같은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이 팀 저 팀에서 일 하면서 경험도 쌓고
툴도 배워보고 예술가의 자립에 대한 강연도 듣고
매일매일 이만큼씩의 작업을 하지 않으면 나는 사람이 아니다 하고 작업을 했습니다.
창작해서 버는 돈은 한달에 30만원인데 그 중 10만원을 요새 뭐가 잘 팔리는지 조사하는데에 쓰고 레퍼런스 조사에 써 가면서 글을 썼다. 창작이 직업이 아니라 취미고 자아실현이라는 소리를 듣는게 싫어서 성실하려고 애썼다. 직업인이라면 멘탈이 안 좋은 날에도 일이 손에 안 잡히는 날 아픈 날 슬픈 날 기분과 상태에 상관없이 일정한 퀄리티를 내야 한다고 믿으며 휴가도 연차도 없이 일을 했다. 제 값에 좋은 퀄리티로 시간 내에 일을 마치면 뭐라도 될 줄 알았다.
내가 계속 글에서 '창작'으로 얼버무리는 것은 남이 내가 누군지 혹시 알 것 같아서, 몰랐으면 좋겠어서이기는 한데. 설명을 위해서 굳이 좀 더 말하자면 스토리텔링 위주의 글쓰는 작업을 했었다. 매체도 되게 다양했고, 독자층도 다양했다. 일을 가려서 받을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누가 일을 준다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 동화를 써달라면 동화를 쓰고 BL이 필요하시다면 BL을 쓰고 오디오며 애니메이션이며 게임 웹툰 소설 가리지 않았다.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겠다. 일이 계속 들어오지 않은 것은 네가 일을 그지같이 해서가 아니냐, 너 실력 없는 거 아니냐.
이에 대해서 말하려면 우선 시장에 대해서 말을 해야 하는데, 먼저 일을 줄 매체 혹은 매체와 나를 연결시켜줄만한 회사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전자가 플랫폼이고 후자가 CP인데, CP는 되게 많다. 그것은 스타트업이기는 한데 사실 자영업에 가깝다. 그래서 CP는 많이 망한다. 나는 에세이나 칼럼 등의 자유 기고가 가능한 종류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글을 실을 수 있는 매체가 좀 더 적었고, 작업 특성상 내 글을 시각화 혹은 청각화 해줄 사람이 꼭 있어야 했다. 그 와중에 자기 일 도와주면 적당한 때 자기가 데뷔시켜 주겠다는 놈이 있어서 몇 년 날린 탓도 있다.
찾아보면 나 같은 사람들이 많다. 잘 한다. 심지어 바쁘다. 그렇지만 돈이 없다. 우선은 단가가 매우 낮고, 경험은 많은데 경력으로 인정되는 것이 없다. 창작 중에서도 내가 하는 작업 자체가 그렇다. 이전 작품을 성공시켰다고 해도 차기작을 하려면 또 다시 처음과 같은 혹은 비슷한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름값이 높아지면 선발에 유리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경력을 인정해준다고 하기는 어렵다.
핑계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저쪽 창작은 안 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창작을 아주 그만두는 것은, 글쎄, 그런 건 좀 불가능하다. 글쓰는 사람은 계속 글을 쓴다.) 그리고 취업을 결심했고. 창작을 조금씩 길게 가늘게 가져가는, 수익 나는 취미 정도로 가져가면서 회사일을 하고 싶다. 이유는 앞에서 다 말했다. 그냥, 잘할 것 같아서. 하고 싶어서. 인생에 저거 아니면 죽는다고 생각했던 일의 비중을 줄인다고 내가 죽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도 있다.
그러니까 남보다 늦었다고 포기하고 싶지도 않고 지금까지 뭐 하셨냐는 이야기에 찌그러지고 싶지도 않다. 나는 지금까지 좋아하는 일을 아주 열심히 해 왔다. 일찍부터 평생 할 일을 찾고 정해서 서른쯤에 그 일의 전문가가 되는 것만이 그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마치, 29세에 창작을 시작하는 이가 있는 것처럼, 29세에 마케터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뭔가 바보짓을 했다고 후회하거나 인생 망테크 탔거나 꼬였거나 그런 얘기를 사실 진짜로 믿거나 진심으로 하고 싶지 않다. 사실이 그렇지 않으니까. 그냥 다른 일을 찾은 것 뿐이다. 모이고 쌓여서 내 경력이 되길 바라는 다른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