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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Sep 30. 2019

잘린지 한 달만에 채용?

가고 싶은 곳은 날 부르지 않고 오라는 곳은 수상하고 

벌써 9월 말이군요. 원래대로라면 오늘 다른 회사에 첫 출근 하는 날입니다. 하지만 저는 집에서 글을 쓰고 있어요. 운 좋게 어느 회사에 합격은 했는데, 안 가기로 했습니다. 


면접에 합격하고, 과제도 통과하고, 합격 전화를 받으니 마음이 좋았어요. 사람들도 괜찮아보였고요. 일도 잘 맞을 것 같았습니다. 입사 전에 밥 한끼 같이 하자고 해서 갔는데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었어요. 그리고 대표님과 처우에 대한 이야기를 따로 나누었습니다. 


연봉과 근무 조건 이외에도 제가 나이는 많지만 회사의 신입이니까, 상사가 저보다 어리지만 잘 따라와주고...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당연하죠. 제가 나이가 많은데 일을 구하기 때문에 감안한다기 보다는, 저는 애초에 나이나 서열 같은 것을 따지는 것을 싫어하고,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어진 다음 말 때문에, 저는 고민 끝에 그 회사에 가지 않기로 했어요. 


"회사가 위계가 있을 규모도 아니고, 위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당분간은 8시 40분까지 나와서 사무실 청소도 하고, 막내 노릇 좀 해줘요."


신입과 막내는 다르죠. 막내는, 케이팝 걸그룹의 포지션이거나, 형제들 간에 가장 늦게 태어난 사람이 막내입니다. 회사에서 '막내'를 따진다는 것은 좀 위험신호처럼 느껴졌어요. 일단 내 또래 친구들에게 물었을 때는 전부 '도망쳐!!!!!!!!!!!!'라는 답장이 왔습니다. 하지만 이거는 나와 우리 세대 혹은 내 친구들이 좀 예민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본가로 내려갔어요. 그리고 퇴근한 아빠한테 물어봤습니다. 


"거기서 당분간이라는 건 네 밑으로 누가 들어올 때까지일 수도 있는 건데... 막내노릇도 맞으면 하는 거고, 안 맞으면 못하는 거지. 우리 때는 뭐 당연히 그런가보다 했지만 네 나이때... 글쎄...." 


아빠보다 늦게 퇴근한 엄마는 좀 더 즉각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엄마, 내가 가기로 한 회사 있잖아... 다 좋고 사람들도 좋고 돈도 맘에 드는데 당분간 8시 40분까지 와서 청소를..." 

"너 실업급여 나오잖아? 더 찾아봐." 


개중 한 친구는 '일단 도망을 치느니 다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라고 말했지만, 저는 아무래도 쎄하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습니다. 쎄이다가 번쩍번쩍 켜지고 쎄이렌이 애애애앵 울리는데 하루 이틀 나가보고 판단하는 게... 일단 서로 좋을 것 같지 않았고요. 무엇보다 저는 애매하게 참을 수 있는 타입이라, 막상 가면 두 세달은 다니고 나서야 아 진짜 아니다, 그럴 것 같은 거예요. 


그러면 그때는 실업급여도 못 타고 또 직장 급하게 찾아야 하는데다가 조기재취업수당도 하늘로 날아가지요. 내가 굳이 그렇게 해야 할까? 저는 정말 죄송하지만 다른 회사에 합격했다고 메일을 썼습니다. 8시 40분까지 나가는 것은 무리라고 말할 수도 있고, 조율도 할 수 있겠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평소에 정말 안 좋아하는 말이거든요. 어떻게 열을 알아요. 


그렇지만 보통 입사 전에는 설레거든요. 이번엔 잘 해야지, 라는 각오도 있고. 그런데 회사에 가기 전부터 이상한 데면 어떻게 하지? 갔는데 안 맞진 않을까? >>>잘 버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너무 가득한데 도저히 거길 갈 생각이 안 들었어요. 


그래서 당분간은 일자리를 더 찾아볼 생각입니다. 써 놓고 보니 배부른 소리 같기도 하지만 저는 음... 지금껏 너무 많은 것에 갑지덕지 하면서 살다보니까, 나중에 보면 그게 다 통수고 착취였더라고요. 감지덕지하게 여겨서 한 일 중에 나한테 도움이 된 일이 뭐가 있었는가, 없었어요. 


큰 회사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워라밸을 추구하지도 않아요. 그냥 멀쩡히 일 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 뿐인데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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