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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Aug 16. 2019

로켓 종료 인턴

잘렸다, 싹둑.

싹둑 잘렸어요. 정규직 채용 전환 인턴생활 두 달이 지나고 8월이 되자 부정적인 피드백이 몰아치더니 인담이 바로 밥을 먹자고 해서 감이 딱 왔습니다. 뭐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면서 밥이 먹고 싶은 거지? 나는 알 수가 없었지만, 아무튼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계약 종료 이야기를 들었죠.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저는 중간에서 계속 이것저것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럼 잘 생각해보고 될 만한 걸 가져가려고 했거든요."

"안된다고 해도 끊임없이 의견을 내기를 바라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적극적인게, 일만이 아니라 사람들이랑 어울리려고 노력을 하는지, 회사랑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인지 보는 거예요. 그런데 밥도 같이 잘 안 먹고 다이어트 한다고 맨날 도시락 싸오시고, 전혀 노력을 안 하셨잖아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저는 그 점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했고 맡은 일을 잘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업무도 못하셨잖아요. 그렇게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뚜껑 열어보면 평가가? 글 쓰는 것도, 저는 반짝님 글 하나도 안 읽혀요."


사실 저는 이 이야기를 왜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거든요. 계약 종료면 종료인거고, 업무 피드백은 부서장에게 차고 넘치게 들었는데, 내가 왜 인담에게 혼이 나고 있으며 왜 그에 대해 변명을 하고 있는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글을 못쓴다는 얘기는 여기서도 처음이고 살면서도 처음이었고요. 아무튼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재계약 기회는 드리겠다고, 만회해 보시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만약에 지금 드린 피드백이 억울하면 재계약 안 하는 게 낫다고. 나는 당장 집에 가고 싶었지만, 앞날을 조금 더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생각해보고 얘기해주겠다고 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더 있어봐야 좋을 게 없고, 퇴사도 계약 종료로 된다고 하고, 전 회사에서 일한 기간이 있어 실업 급여 조건도 만족하니 나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나갈 때 나가더라도 이유는 알고 싶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평가 기준이 있었고 업무에 대해서 어떤 피드백이 있었나요? 소극적이었다 외에 다른 이야기는 무엇이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ㅇㅇ님과 ㅁㅁ님에게 이미 듣지 않으셨나요? 저도 그냥 들은 이야기라 잘 모릅니다. 필요하시면 직접 물어보세요."


음. 저는 당연히 인턴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을 줄 알았어요. 문서로요. 그런게 인사담당자에게 전달이 되고 결정이 나고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아무튼 그래서 계약은 종료되었어요. 즐겁지는 않은 경험이었죠. 모든 게 너무 갑작스러웠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저는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도 과히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3,4,5월달에는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인생을 지나치게 돌이켜보는 바람에 자기소개서 한번 쓸 때마다 정신이 마구 깎여나가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내가 뭘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요. 나이가 너무 많아서 취업이 안 될거라든가 관련 경력도 없고 학과 졸업도 안 했다든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스스로를 제한하지도 않게 되었고요. 회사는 만만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회사란 곳이 나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정상성 규범 안의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고 적응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어요. 정말 일이 뭐가 대단히 꼬여서 내년에 신입사원이 된다고 해도 그렇게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게 되었고요. 그건 아무래도 인턴을 겪은 덕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전까지는 죽으면 안 되니까 계속 살아야 한다든가, 기어서라도 앞으로 조금씩은 나아가야 한다든가, 뭐라도 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든가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했는데 지금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스스로를 그렇게 몰아세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편해졌어요. 인턴 경험도 경험이지만, 어느정도는 실패가 가져다준 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채용 전환에 실패하고 나니까, 절대로 실패하면 안 돼, 잘 해야 해,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을 더 할 수가 없게 되잖아요. 그러고 나니까 일에서 내가 뭘 더 할 수 있었는지도 보이는 것 같고. 회사와 나에 대해서도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아무튼 저는 재취업 준비 합니다. 인턴 석달 동안 얻은 것들이 또 있으니까, 다음에는 더 낫겠죠.


*지난번에 어디 노출이 되었는지 유입수가 많아져 잠시 내렸다 올립니다 ㅠ 즈는 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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