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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Oct 06. 2019

당신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백 번 들어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한 명만 있으면

면접을 보다보면 마음이 꺾입니다. 누구라도 그럴거라고 생각해요. 그 전까지 그냥 자연인 1로서 살아오다가 회사원이 되기 위해서 취업 시장에 뛰어들면 낯선 평가 기준에 맞닥뜨리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런 기준 앞에서 나는 아주 작아집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죠. '이 집단에서'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솔직히 시키는 일을 잘 할 수 있는지, 그 전에는 왜 한 군데 오래 못 있었는지, 왜 회사를 안 다녔는지 같은 질문을 계속 받고 있습니다. 

'작가들은 자기 자존심 때문에 글을 오래 붙잡고 있고 협업도 안 하려고 하고 출퇴근도 힘들어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 게 대부분이잖아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럼 서류에서 떨어뜨리지 왜 굳이 부르셨나요, 같은 생각도 들어요. 내가 무엇이라고 말해도 계속 작가의 일반론을 이야기할 것이라면 무엇을 원해서 나를 불렀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언제는 한번 물어봤어요. 그렇게 생각하시는데 왜 불렀냐고. 그랬더니 궁금해서 불렀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취업은 요원하고, 방세는 계속 나가고 있고, 나는 점점 더 스스로를 무가치한 인간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하루도 논 적이 없는데, 끊임없이 당신은 왜 이렇게 불성실하게 살았느냐는 질문을 받는 것을 보면 나는 지금껏 잘못된 방향으로 노력을 했구나, 인생을 헛살았구나, 이 인생을 어떻게 고쳐서 써야하지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전까지 내가 해왔던 것들, 내가 살았던 것이 전부 헛수고 같고,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실수 같았어요. 내가 무언가 크게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잘 될 것이다'라는 착각을요. 


스무 살 넘어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부터 저는 '너는 잘 될 거야.'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너는 뭐가 되도 되겠다.'같은 말이요. 그렇게 스물아홉이고, 아직 백수인 채 서른까지 100일도 남지 않았습니다. 가끔 누군가로부터 '너는 잘 될 거야.' 라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포텐셜만 갖고 10년째입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대로 잘 될 수 있어보이는 상태로 늙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너는 잘 될거야.'는 다만 연상의 사람들이 나에게 할 수 있는 일종의 호감 표시였을텐데, 나는 그런 말들을 너무 믿어서 일찍이 포기하지 못하고 안 되는 일들을 붙들고 있었던 게 아닐까? 머리가 나빠서? 

그런데 얼마 전 저보다 몇 살 어린 친구와 이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구가 '그런데 나는 진짜로 반짝이가 잘 될거라고 생각해.'라고 말해주었어요. 제가 끊임없이 유의미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고요. 계속 글을 쓰고 있고, 자기 커리어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요. 

회사원이 되는 것이 일단 저의 목표이기는 하지만 그 친구가 해준 이야기는 정말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취업 시장에서의 내 평가가 나라는 인간 전체를 좋다 나쁘다고 규정지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회사에서 보기에 제가 별로 안 뽑고 싶은 사람이라고 해서 내가 해왔던 일들이 전부 사라지는 건 아닌거죠. 


여전히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 저는 예술병 걸려서 인생 말아먹은 ㅎㅌㅊ라는 것을 압니다. 잘 된 작품이 없어서 직장을 구하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하는 20대 백수이고, 지금까지 길게 한 일이 없고, 불성실해 보이고, 지금 당장 회사에서 써먹을 수 있는 스킬이 없고, 글쓰기 그거 한글 배웠으면 다 할 수 있는 거 별 특기도 아니고 어쩌고 저쩌고... 저에 대한 그런 평가는 산처럼 많아요. 

그게 100% 사실이라고 해도 그걸 내면화 하는 순간 사람은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집니다. 객관적 평가랍시고 다 씹어 삼키면 독이 되든가 목구멍이 찢어지든가 합니다. 다 너 좋으라고 하는 말이야,가 어떻게 사람을 속에서부터 썩어들게 하는지 잘 알아요. 하지만 거기에 저항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통장 잔고와 내 나이와 이력서의 경력 년수 같은 숫자들이 내가 못난 사람이라는 명백한 근거가 되어주잖아요? 나에 대한 타인의 비난에 동조하기는 정말 쉽습니다.

밝은 쪽을 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미래가 밝지는 않으니까. 다만 이력서에 쓰여 있는 것이 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잊고 있었던 장점과, 내가 무시했던 내 노력들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살아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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