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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Feb 01. 2020

1년을 어떻게 버틴담

회사는 음.. 바쁜 거 외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편입니다. 예를 들면 제안서는 일과시간 안에 하지 말고 일과시간 끝나고 하라고 한다던가. 일과시간 안에 전부 하고자 하면 충분히 할 수 있거든요. 근데 그 서류 업무를 일과 시간 안에 못 하게 하는거죠. 그 밖에도 여러가지 스트레스 요인이 많아요. 70대 사장이 운영하는 중소기업이고 잡플래닛 평점 1점대 회사입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에 1년을 넘긴 사람은 거의 없고 연령대도 낮아요. 다녀보고, 아 여기 정말 쓰레기구나 하고 나가는거죠. 얼마전에는 신입사원 넷을 뽑았는데 위에서 이 사람들을 '시험'하겠답시고 뭔가 헛짓거리를 해서 세 명이 나갔습니다.


이제 저는 서른이고 스펙도 없고 경력도 없으니 여기서 1년을 버텨야 해요. 나날이 스트레스는 심해지고 저는 설 연휴에도 나와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2주 동안, 그러니까 2월 15일 전까지 주말 없어요. 뭐 어디서는 워라밸 같은 건 아아아아주 위험한 생각이라고 하더라마는. 밸런스가 문제가 아니고 내가 기계가 아니니까요. 쉬어야 뭐라도 일을 하고 그러잖아요. 


그리고 오늘은 토요일이고 저는 회사입니다. 내일도 회사일거고요. 다음 주말에도 나와서 일해야 해요. 일정이 무리하니까요. 너무 힘든데 사람 하나 더 뽑아야겠다고 했다가 못하겠으면 나가란 말을 들었습니다. 뭐 회사에서 사람 한둘 나간다고 회사가 안 돌아가진 않겠지요. 어제 하루 종일 그냥 다 짐싸들고 집에 갈까, 하는 와중에 저랑 같은 날 입사했던 친구가 퇴사했어요. 어제까지였다네요. 왜 나갔는지 너무 잘 알겠고요. 


하지만 그 친구는 이십대 중반이고 저는 이제 서른. 29세 말에 취업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여기서 1년을 못채우면 작년과 같은 스펙으로 (무스펙이죠) 나이 한 살 더 먹는거고. 퇴사 왜 했냐고 할 거고 그 정도도 못견디는 사람이 될 게 너무 뻔하잖아요. 그러니 버텨야죠. 버텨야 하는데... 버티면 돈도 모을 수 있을거고 경력도 쌓일거고 이직도 쉽겠죠. 글은 어떻게 얼마나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이도저도 아니게 되는 건 아닐까 좀 무서워요. 하지만 전업은 쉽지 않고 원래 투잡은 어려운거니까. 무리해서라도 글을 쓰는게 맞겠죠. 그러다 혹시 병들고 죽게 되면, 뭐... 병들고 죽으면 되는거고. 죽으면 차라리 낫죠. 


내 인생은 느려요. 그건 인정할 수 밖에 없죠. 뭘해도 남보다 3년은 느려요. 3년은 떼어먹혔으니까요. (3년간 노동착취당해서 돈도 커리어도 날아갔었습니다) 저는 글쎄요. 회사도 못 버티고 돈도 못 벌고 가진것도 없고 그래서 나 한사람을 책임질 수 없다면 그냥 죽어버리는게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나 같은 사람은 그냥 죽는게 낫지 않을까. 뭐 그렇진 않겠죠. 아무튼 다음주까지는 맡은 일이 있으니까 일을 하긴 해야겠죠. 그게 지나면 조금 나아질지도 모르고. 물론 이 회사는 사람 알기를 좆같이 알아요. 좆소가 그래서 좆소인가봐요. 아무튼 1년을 버텨야 하는데, 글쎼 버틸 수 있을까. 저는 버티고 싶은데 교통사고나 뭐 그런걸로 죽어버리면 좋을 것 같아요. 


회사를 그만둔다는 선택지가 저에게는 없어요. 나 같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일자리는 다 이 정도일거거든요. 1년이라도 경력이 쌓이면 이거보다는 나은데 갈 수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버티는거고. 최소한 돈이라도 더 받고 옮길 수 있겠지 싶고. 여기 승진 안시켜주거든요. '사실상'책임자인 사원들이 많아요. 돈을 더 주기 싫으니까 직급을 안 줘요. 그러니까 이직말고는 사실 답이 없죠. 누구는 연봉이 조오오오금 올랐대요. 월 몇만원정도라고. 그러니까 12개월 다 합치면 몇십만원 정도. 


나가려면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버텨야겠죠. 망가져서 아무것도 못하고 골골대려고 버티는 건 아니니까. 글도 꾸준히 써야 하고요. 뭐 정 안되겠으면 나는 회사를 못 다니는 인간이구나 하고 다른 살 길을 찾는것도 방법이겠죠. 일단 지금 그만둔다고 해도 2주는 자리에 앉아있어야 하니 문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못되겠고요. 아무튼 저는 피할 수 있는 것과 피할 수 없는 것을 좀 정리해보고 안되는 거 안된다고 얘기 하면서 버텨보려고요. 그러다가 정 안되겠으면 그만두죠 뭐. 내가 살아야 뭐라도 미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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