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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Jun 03. 2020

저 놈이 잘 되는 게 싫다

어쩔 수 없다. 개새끼가 잘 되는 꼴, 보기 싫지만, 보통 그거랑 그거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알음알음 블랙기업이라고 소문난 스타트업들도 잘 나가고, 나한테 좆같이 굴었던 새끼들도 잘 나가고, 어떤 새끼는 죽어 지내고, 나를 어떻게 대했든 어떤 사람이든간에, 그의 성취는 그의 삶의 태도와는 그렇게 큰 상관이 없다. 물론 꼴보기 싫다. 겉으로나마 그와 친분을 유지하는 내 친구들도, 가끔은 좀 야속하고. 충분히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도 조금은.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인 사람들도, 뭐 조금. 같은 일로 오래 화를 내는 바람에, 너무 여러번 말하기도 뭐해서, 입을 다물어야 하는 나도, 사소한 일로 뭐 이렇게 오래 꽁해있나 싶은 나도 조금 그렇고. 정작 나를 모욕하고도 모욕한 줄 모르는 상대방은 오늘도 즐겁고 편안하게 발뻗고 잘텐데 왜 나는 이렇게 시시때때로 빡치나 싶고. 


그치만 매일 빡치다가, 주에 한 번쯤 아이 씨발 지뢰를 밟았네 해서 빡치다가, 뭐 한 달 두 달 석 달 지나면, 날이 더 더워지면, 소식이 들려도 눈에 띄어도 누가 그를 칭찬하거나 어디서 보여도 그러려니 할 수 있겠지. 남은 남, 나는 나니까 개새끼든 소새끼든 남은 남대로 살게 신경을 끄고 나는 나대로 살겠거니. 


그러니까 별 수 없는거다. 충분히 분풀이 하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되며, 그렇게 잠깐 내질러서 무엇에 쓰냐. 쓸데없이 말 섞기도 싫고 기분만 더 상할 것인데. 


그러니까. 분별. 분별있게 행동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화내지 않고... 아니 화를 혼자 내더라도. 


하지만 모욕에 대해서는 조금 쏟아놓고 싶다. '내가 이런 사람이니까' 나를 '그렇게'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모욕. 내가 섹스를 좋아하니까. 내가 야설을 쓰니까. 내가 작가니까. 내가 말귀를 적당히 알아듣고 맞장구를 잘 쳐주니까. 내가 여자니까. 내가 그렇게 곱게 자라질 못했으니까. 내가 다 이해하니까. 내가 다 아니까. 내가 눈치가 빤하니까. 그런 옷을 입어서. 그런 말을 해서. 그러고 다녀서. 


만만해서. 


난 이제 그 모든 게 너무 지친다. 섹스? 좋아하지. 근데 이제 꼬시는 남자랑 적당히 쿵짝 맞춰 놀아주기도 빡친다. 오늘 한번 놀아보자고 하는 거랑, 그 왜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인자한 쿨걸들 있잖아. 포르노 마망 같은거. 그런거 바라면 어이가 없다. 하기 싫어. 나이도 먹었고 그럴 기력도 없고 귀찮고 재미도 없고 그런 걸로 자아효능감 채울 만큼, 아 그래도 내가 이 남자에게 뭐라도 된 것 같다, 그런 거 기꺼워할 만큼 내 인생이 비어있지 않다. 


아. 이 모욕이, 딱히 범죄가 아닌 이런 모욕이 왜 빡치는지 알았다. 논리 자체는 범죄랑 그렇게 멀지도 않아서 그래. 타인의 영역을 아무렇지 않게 침범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그 무심한 폭력이. 내 땅에 흙발로 들어오려는 그 시도가. 


만만하게 보면서, 무슨 대단한 선택권이나, 호의를 베풀어주는 양, 결국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본질적으로는 똑같은데, 마치 이 정도면 그래도 내가 널 존중한다는 제스쳐를 취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마치 어떤..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있는 상태에서, 멀쩡한 베이스를 깔고 제안과 거절이 오간것처럼. 그게 무슨 서툴러서가 아니라. 잘 몰라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너무 만만해서인거지.


아쉽게도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방법 같은 건 없다. 사람들은 다 자기만의 가치 판단을 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끝없이 위계를 나누고 저 사람 내가 뜯어먹을 거 있나 없나 빠르게 스캔하고 관계의 거리와 형태를 자기 나름대로 설정하니까. 내가 강하거나 약하게 꾸민다고 해서 통하는게 아니다. 사람들은 정말 잘 알아본다. 


미리미리 사람을 경계하는 것도 내가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살면서 모욕을 겪지 않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노동력이나 돈이나 감정적으로 더 크게 뜯긴적도 있으니, 그 전에, 기분만 나쁜 선에서 사람을 쳐낼 수 있게 된 것만도 발전이라고 생각하는게 나을까. 난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삼켜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시간이 해결해주겠거니 하는 거지. 이런 분노는 머리나 배가 살살 아픈 것처럼, 시간을 잡아먹고 번거롭지만 대단한 건 아니다. 어쩌다 한 번, 20분 정도 배가 살살 아파서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정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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