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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Jul 29. 2020

좀 모자랄 수도 있기는 하지

계란형과 공아가에 대해서 

*이 글을 쓴 이후 여러 사건이 터졌고 공 씨는... 인심을 획득한 듯 하다 세상 일 참 기이하게도 돌아가는구나. 


피지컬 갤러리라는 채널을 좋아한다. 운동에는 심으뜸님이나 삐약스핏, 땅끄부부, 그리고 강하나(빛과 소금이다)님의 영상에 더 도움을 받고 있지만 어디가 아플 때, 자세 등에는 피지컬 갤러리의 도움을 많이 받다가 요즘은 운동 예능으로 보고 있다. 


군대 관련 영상은 안 좋아해서 가짜사나이를 안 봤는데, 안 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좀 있었던 걸 알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공혁준이 인성이 안 좋다, 갈수록 열심히 안 한다, 그런 거였다. 예전에 무도 길 사건 (오줌 관련) 생각도 났고... 


물론 김계란이 대단히 포용력 있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무작정 개쓰레기인 공혁준을 받아준다는 식의 시각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멀리서 재밌는면만 골라보는 시청자이고 그들 사이에 어떤 감정이 있었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시청자가 보는 것은 편집본이다. 


실제의 생활이 있다. 그 중 영상으로 담기는 게 있다. 그리고 거기서 한번 더 편집이 된다. 시청자가 보는 것은 자막과 음향이 입혀진 최종 결과물이다. 거기서 보이는 것도 있지만,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지켜보는 시청자보다는 공혁준이 김계란과 더 가까운 사람이라는거다. 부처같은 계란형과 쓰레기 공혁준이라는 구도는 김계란 본인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지지고 볶고 싸우고 답답해도 그에게 공혁준은 친구이고 시청자는 감사해도 시청자다. 얘가 잘못을 했다고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얘를 때리면 화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족과 친구와 우리 오빠 언니(아이도루)는 원래 까도 내가 까는 거 아니던가. 다행스럽게도 최근 영상 덧글에서는 공혁준을 응원하는 사람도 많았다. 


악플이라고 하는 게 좋은 덧글 100개 중에 한 개만 불호 덧글이어도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스갤 보지 마라고 했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걸 굳이 들여다보고 싶은 것 또한 이해가 간다. 스갤 없어도 잘 굴러가는데 그걸 왜 못 놓느냐고 하는 그 마음도 안다. 누구나, 세상에 결과물을 내놓는 누구나 자기 이름을 검색한다. 그걸 안 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남들이 뭐라고 하는지 끝없이 듣고 싶어한다. 대단한 관종이라서가 아니다. 하다못해 블로그를 하고 sns를 해도 좋아요와 덧글에 신경을 쓰는 게 사람들이다. 나쁘든 좋든 누가 나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세상에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끝없이 인정투쟁을 한다. 안 하는 사람은 없다. 


구체적으로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 방법이 없다. 다만 꾸준한 상담과, 필요하다면 현대의학(정신과 약. 나쁜 게 아니다. 그 밖에 편두통 생리통 있을 때 진통제도 먹는 게 낫다.)의 도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는다면 평생 그렇진 않다고 말하고 싶다. 병은 낫거나, 관리가 가능하다. 외부 환경이 나를 괴롭게 하는 것에도 내 정신이 나를 괴롭게 하는 것에도 사람은 이겨낼 수 있다. 시간은 좀 필요하지만 평생이 걸리는 일도 아니고 불가능하지도 않는다. 깊은 우울에 빠지면 인생이 다 망한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그의 영상을 보는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공혁준은, 그나마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끝없이 '하하하 넌 안돼'라고 말하는 걸 들었던 거다. 그건 악순환이다. 그게 네 잘못이다 내 잘못이다 따지기 어렵게, 작은 실수와 실패들과 잘못된 피드백이 결합해서 커지면 악순환이다. 그 상황에서, 비록 수심 가득한 얼굴일지라도 돌아온 혈색과 전에 비해 건강해보이는 모습은 분명 그가 얻어낸 성과라고 보인다. 


그들의 문제를 그들끼리 이야기 해서 풀었다면 시청자는 그냥 잘 되길 바라는 것 반, 그런가보다 반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아무 모르는 사람이어도 잘 되길 바라는 선의를 가진 한 사람으로서 그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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