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은 <소년이 온다>
용기가 필요했다.
다시 마주할 용기.
사진 한 장 없는 글자만 빼곡한 책, 하지만 두려웠다.
분명 또 아플 테니까.
2024년 12월 3일 밤.
그 밤이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기에...
아파도 다시 마주해야겠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책을 펼쳤다.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눈물이 핑그르르 가득 고였다.
눈물을 삼키려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니까 동호는 놓쳐버린 친구 정대가 너무도 미안했던 것이다.
젠장...
총을 쏜 당사자들은 미안해하지 않는데...
한꺼번에 전부를 읽을 수는 없었다.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허구였지만 이 소설은 사실이었으니까.
몇 장을 읽다가 멈추고 또다시 읽다가 멈추고, 그러기를 여러 날 동안 반복해야 했다.
그래도 그만두지 않았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봐야 한다.' 생각했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에필로그에 적은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
그렇게 꿋꿋하게 견디던 나는 마지막 이야기 '꽃 핀 쪽으로'에서 미친 듯 울음을 쏟아냈다.
어미의 울부짖음, 훠이훠이 막내아들 따라가고파 실성한 듯 자신을 탓하는 어미의 절규를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오늘 새벽 누군가 나를 깨웠다. "일어나." 분명 들었는데 아직 캄캄하다.
나는 그간 무엇을 했을까?
광주의 비극을 열흘 동안의 광주라는 특정 도시에서의 참극이었다고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사십 년 넘은 시간이 흘렀으니 지금쯤이면 그들의 상처가 아물었을 거라 감히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천만에. 그럴 수 없는 거다.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보통 사람으로 살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
천재지변이 아니다. 국가가 죽였다. 국가가 해쳤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방치했다.
그저 그들이 소리 내지 않기를 바랐다.
책을 읽으며 '누가 용서를 말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누가... 누구를... 용서하란 말인가?
지금도 너무너무 아픈데, 지금도 찔러대고 있는데...
당사자들에게 물어보긴 했는가 말이다.
작년 11월쯤에 대학생인 아들이 그러더라.
독립운동과 친일 중에... 친일? 눈치껏 해야죠.
그래야 살죠.
불같이 화를 내는 내게
엄마, 보세요. 그들이 잘 살잖아요.
아뿔싸! 우리의 잘못이구나 하고 통탄했다.
우리가 제대로 된 교훈을 남기지 못했구나.
이제 함부로 주제넘게 용서를 말하지 않으련다.
<작별하지 않는다> 이 작품도 읽어야겠다.
이미 그래픽 노블 <지슬>과 2013년도에 개봉된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를 통해 제주 4.3의 비극을 보았다. 춥고, 아프고 참혹했다. 그래서 <작별하지 않는다>는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그러지 않기로 했다. 곧 읽어야겠다. 책장에 꽂힌 지는 좀 되었지만 두려워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겠지.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현재 돈의문박물관마을 <머뭄>에 전시중이다. <홀로 절망하는 그대에게>의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