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래야만 했을까?
첫눈이라고? 그럴 리가... 싶지만 첫눈이 맞다.
12월을 목전에 둔 그날 밤 내린 눈은 첫눈이었다.
처억-척 차곡차곡 눈 쌓이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내 눈으로 쏟아진 풍경은
동화 속 겨울왕국을 통째로 옮긴 듯했다.
아침이라지만 아직은 밤이 채 물러가지 않았기에 옅은 새벽빛은 하얀 눈빛과 뒤섞여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창가에 섰다. 내 고양이와 함께... 눈 쌓이는 소리가 심상치 않더니 엄청나게 쌓였구나.
하얀 눈의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묘한 느낌.
가을 간다 싶더니 서둘러 겨울이 온 모양이구나.
춥겠다.
그래도 나뭇가지마다 하얗게 핀 눈꽃은 참 이쁘구나.
어라! 이상타. 뭔가 허전한데?
아, 맞다. 산수유나무에 열매가 없다.
올해는 열매를 맺지 않았지.
이 아파트로 이사 온 지 십수 년 되었다.
매해 겨울마다 하얀 눈 속에 살포시 감춰진 빨간 산수유 열매가 참 예뻤다.
그때마다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를 떠올리곤 했다.
시큼하고 떫은 빨간 열매, 입안 가득 침이 고였다.
겨우내 새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 주는 열매.
열매를 물고 호로록 날아가는 작은 새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번잡한 마음 위로가 되곤 했다.
이른 봄 연둣빛 살짝 도는 노란 꽃들을 피울 때까지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빨간 열매를
이번 겨울에는 볼 수 없다.
그러니까 봄의 끝자락을 넘어 여름이 막 시작되려 하던 때였다.
베란다 창 밖으로 관리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한다.
알루미늄 양동이에 든 무언가를 마당에 들이부었다.
"뭐 하세요? 나무들에게 영양제 주시는 건가요?"
"아니요, 농약입니다."
"네? 농약이요?"
"죽은 나무 밑동 썩은 부분에 개미집이 있거든요."
우리 집은 아파트 1층이다. 죽은 나무로부터 우리 집과의 거리는 2m가 채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개미가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집안에 개미가 돌아다니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웬 개미 퇴치?
그걸 위해서 농약을 양동이 한가득 들이붓는다고?
개미를 다 죽이겠다고? 섬찟했다.
진짜 여름이 왔다. 잔인하게 더웠다. 30도를 가볍게 넘기는 날들이 많았다. 비도 많았다.
관리실에서는 수시로 수목 소독을 했다. 병충해가 생겼단다. 방제를 해도 잘 잡히지 않는단다.
눈에 띄게 힘겨워하는 나무들.
나뭇가지마다 거미줄이 넘쳐났다.
그리고 가을... 봄에 분명 꽃이 피었드랬는데
감나무에도 산수유나무에도 열매가 없다.
단풍도 없다. 그냥 힘 없이 잎을 떨구더니
앙상한 가지만 바람에 흔들린다.
어쩌면...
아니... 아니겠지.
농약을 들이부으며 다 죽기를 바랐던 그곳과
뿌리를 맞대고 있는 나무들인 것은 우연일 게다.
그래서... 개미들은 모두 죽었을까? 그럴 리가...
이번 겨울의 하얀 눈은 어쩐지 싱겁고 허전하다.
산수유나무가 영영 죽은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모두 행복해져라 겨울 (2023. 나무 패널 위에 아크릴 물감, 입체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