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함께

개인전을 시작하며

by 꿈쟁이

작업 방식을 바꾸어야만 했다. 종이를 잘라 그림을 그려 붙이는 식의 작업은 당분간은 할 수 없게 되었다. 딱히 언제까지라고 정할 수도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작년 12월 다친 꼬마 고양이를 구조해 수술 해주었고 결국 둘째 고양이로 들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려하는 집사 역시 이 녀석들에게는 서로 차지하고픈 영역인지라 가로, 세로 1미터 남짓한 나의 가난한 작업 테이블은 두 녀석의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집사의 곤란함이라든가 공간 여기저기 놔둔 녀석들의 쉼터는 싹 무시하고 작업 테이블을 나누어 점령했다. 어쩌랴, 냥님들의 마음인 것을. 그렇다고 작업을 포기할 순 없다. 테이블을 대신할 의자 몇 개를 늘어놓고 그 위에 물감을 펼쳤다. 가위나 칼을 사용할 생각은 아예 접었다. 이제 막 집고양이가 된 둘째가 할짝거리는 통에 붓을 세척할 물통조차 피해야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나무젓가락. 젓가락 끄트머리를 납작하게 칼로 깎았다. ‘이걸로 될까?’ 하는 의심을 물리고 작은 작업을 시도했다. ‘되네! 그렇다면 하자, 이걸로 그려보자.’


나무젓가락을 두드려 그리는 작업은 더디고 더디다. 하지만 그 느린 작업 덕분에 색과 색이 다투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꾸덕꾸덕한 물감의 탄성이 파근파근한 질감으로 남아 따스한 느낌을 더해주는 것은 당초에는 예상치 못했던 덤이다. 아니 어쩌면 애써 나의 고양이들과 함께 공간을 나누고자 했던 고민이 준 선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도 쭈욱 이렇게 그릴 거냐고? 그건 잘 모르겠다. 꽤 많은 이들이 눈물 훔치며 봤던 드라마의 대사 한 줄. “살면 살아진다.” 이 말이 참이 되려면 ‘혼자가 아니라 함께 라면‘이라는 가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함께 한다는 것은 유연하다는 것 그래서 때로는 굽힐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내 작업도 그럴 것이다. 함께 할 수 있다면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내 고양이들, 나와 함께 시간을 부대끼는 이들과 함께라면 나는 여건에 맞춰 작업하려 한다.


작업 테이블 위에 세상 편하게 널브러져 잠든 고양이들과 창밖으로 계절이 오가는 것을 바라보며 똘똘 치 못해도 끝내 백조가 되지 못해도 그리고 꿈을 이루지 않아도 ’함께‘라서 행복할 수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이 시간이 참 행복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