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풀과 친구 되는 법
매일같이 그들을 만났다.
한 손에는 찰랑찰랑 깨끗한 물이 가득 담긴 커다란 물그릇을, 남은 손에는 캔이나 파우치 등의 간식과 사료가 담긴 비닐 가방을 들고 조심조심, 하지만 서둘러 가는 길이다. 목을 빼고 기다릴 고양이들에게.
재촉하는 걸음에 쫓기는 몸이 흔들려 찰랑거리는 물을 엎을까 시선은 늘 땅을 향한다. 매일 보는 그들이지만 언제나 같은 모습은 아니다. 어느 날은 새초롬한 연한 새싹이었다가 어느 날은 제 팔을 한껏 벌려 지경을 넓혔다. 그러다 보일 듯 말 듯 아주 작은 꽃을 피우기도 했는데, 그런 날은 가던 길을 멈추고 자리에 주저앉아 인사를 건넸다. "그것도 꽃이라고... 있을 건 다 있네. 수고했어." 내 말을 듣는지 마는지 아무런 말이 없다. 말 없는 그에게 또 물었다. "그런데, 넌 이름이 뭘까?" 역시나 아무 말도 없다. 그와 한 몸인양 뒤엉켜 자라고 있는 녀석 역시 조용하다. 기다란 줄기에 까맣게 익은 티끌만 한 열매들이 바글바글한 그는 이제 곧 자신의 일을 하려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면 언제 살았었나 싶게 삶을 녹여버리겠지. 기억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너를 어떻게 구별 지어 기억할까? 미안하게도 정말 미안하게도 '풀' 이게 전부구나.
자그마치 십오 년을 한곳에서 살았다.
아무리 나서지 않는 초록이라지만 너무 했던 것이지. 그들을 뭉뚱그려 '풀'이라고만 부르다니. 어쩌면 나보다 먼저 이곳에 터 잡아 살고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그래서 정식으로 그들과 인사하고 친구 맺기로 했다. 우리 동네 "풀" 친구로. 우선 이름부터 알아보자. 이런이런...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그들은 도리어 내게 알아맞혀 보란다. 스무고개 하듯 말이다. 오! 쉽지 않겠는데.
뭐든 애써서 얻어야 제 값을 한다. 아무런 상관없는 누군가가 나에게 "김 아무개입니다."라고 인사한들 그를 기억하기란 애매할 것이다. 녀석들의 이름도 마찬가지겠지. 기억을 더듬어보면 옛 어른 중 누군가는 내게 이름을 가르쳐 준 적 있었을 텐데,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것 마냥 그저 까막눈이다. 그래서 조금은 번거롭지만 재밌는 방법으로 그들과 안면을 트려 한다.
사진을 찍어 이러저러한 방법을 동원해서 검색한다. 요즘 이 분야에서는 둘째라면 서럽다는 인공지능의 힘을 비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매번 다르다. 그들이 추측해 내는 정보를 바탕으로 내가 즐겨보는 식물도감을 펼쳐 놓고 확인한다. 이런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다 보면 마침내 무릎을 탁! 치며 "너였구나!" 하게 된다. 이름을 알았다. 하지만 친구라 말하기는 과한 것이지? 너를 알아야겠다. 너의 생김과 너의 삶을 알아보자. 그래, 네 이야기를 들어보자꾸나. 그리고 순식간에 그려내는 사진 말고 너를 더듬어 너를 그리련다. 그럼 우린 친구가 되는 거야. 내가 너에게 시간을 들였으니까.
이렇게 그와 친구 먹으면 먼발치에서도 그를 알아볼 수 있다. 그가 있었던 자리를 기억하게 되고 그가 진 자리, 그의 꼭 닮은 또 다른 그와도 친구 할 수 있겠지.
덧붙이는 글
아직은 아닐텐데 난데없이
겨울이 성큼하고 보폭을 넓혔다.
아찔했던 여름의 기억이 선명한데도.
친구 맺기로 했던 그들이 화들짝 놀라 움츠러들까
하는 걱정도 있지만
대단한 그들이기에 믿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