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조심

세상의 이치에 대하여

by 이경아

그림형제의 동화집 두 번째 이야기 <고양이와 쥐>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떤 고양이 한 마리가 쥐와 사귀게 되자 틈만 나면 자기가 그 쥐를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줄줄이 늘어놓았습니다. (현대지성 클래식 그림 형제 동화전집)


고양이가 쥐에게 구애를 하는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은 급기야 둘의 동거로 이어진다. 혹시라도 작은 쥐가 잘못될까 걱정이 태산인 고양이는 쥐에게 절대로 집 밖에 나가지 말라고 단단히 이르기까지 한다. 고양이 쥐 생각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그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말았어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쥐는 그저 이 상황이 황홀했나 보다. 누군들 그러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막강한 힘을 가진 이가 나를 사랑한다니. 거기에 더해 나와 함께 살면서 내 안위를 살펴주겠다는데 천군만마라도 얻은 것처럼 의기양양했을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 내가 참 대단하구나 으쓱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는 바야흐로 너도 나도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고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는 내일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삶이었기에 고양이가 내민 손을 구원자의 그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아니면 고양이의 횡포를 익히 알아 그 두려움에 거절 조차 하지 못했을지도.


아무튼 그들은 한 집에서 살게 되었고 곧 닥쳐올 겨울을 대비해 굳기름 한 단지를 샀다. 누구의 돈으로 기름 덩어리를 샀을까? 제발 그것이 가진 것이라고는 부지런함뿐인 쥐의 알량한 전 재산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이야기 어디에도 고양이가 내어주었다는 말이 없다.


위대한 고양이가 말하기를 "세상에서 교회보다 더 안전한 장소는 없을 거야. 누가 감히..."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교회 제단 밑에 기름 단지를 안전하게 보관했다. 꼭 필요할 때가 아니라면 절대 건드리지 말자는 어리석은 약속도 잊지 않았다. 죽은 아내를 살리겠다고 지하 세계로 내려갔던 오르페우스는 하데스와의 약속을 어기고 끝내 뒤를 돌아보고야 말았고, 제우스와의 약속을 저버린 판도라는 세상 곳곳에 증오와 질투, 고통 따위를 퍼뜨렸다. 옛날 옛날에 우렁각시를 사모하던 총각도 딱 3년만 기다리면 해피엔딩인데 결국 참지 못하고 방안을 엿보다 일을 그르치지 않았던가. 그러니 고작 먹이를 두고 맹세한 고양이와 쥐 사이의 약속은 오죽할까?


예상했던 바다. 겨울이 오려면 제법 기다려야 하건만 고양이는 그 기름이 먹고 싶어 안달이 났다. 쥐와 함께라면야 크게 문제 될 것 없겠지만 그럴 리 없지. 그는 고양이다. 쥐를 잡는 고양이다. 처음부터 그럴 속셈이었을 것이다. 곰곰 꾀를 생각해 낸 그는 "내 사촌이 아들을 낳았지 뭐야. 나더러 대부가 되어 달래."라는 거짓말로 집을 나와 곧장 교회로 향했다. '누가 신성한 교회에서 감히 도둑질을?'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할짝할짝 맛있게 핥다 보니 단지 아가리까지 꽉 찼던 굳기름은 안으로 쑥 내려앉았다. 불룩해진 배가 흐뭇한 그는 햇빛 잘 비치는 곳에 늘어져 낮잠도 즐기고, 혹시라도 수염에 기름이 묻지는 않았을까 해서 앞발에 침을 발라 연신 문질러 증거 인멸도 하고, 으슥한 밤이 되어서야 종일 바쁘게 집안일을 하고 있었을 쥐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아주 근사한 하루를 보냈겠지? 아기 이름은 뭐라고 지었어?"

라고 묻는 쥐에게 고양이는

"위 없다"라고 태연하게 답했다.

"위가 없다니? 참 괴상한 이름이네."

쥐가 갸우뚱하자

"빵도둑이라는 너희 집안 이름보다야 낫지."

하고 대꾸했다.


이후로도 고양이는 계속 거짓말을 했고 그때마다 쥐는 속았는데, 어쩜 거짓말도 그렇게나 성의가 없던지 고양이의 사촌들은 툭하면 아기를 낳았다. 그때마다 고양이에게 대부가 되어달라 청했던 것이다. 성의 없는 거짓말에 쥐는 또 얼마나 잘 속던지 덕분에 고양이의 거짓말은 거침이 없다. 사실 의심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아기들의 이름이 '위가 없다, 반쯤 없다, 하나도 없다'라는데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고양이를 무한 신뢰했던 자신을 배반하기 싫어서였는지 '하나도 없다'라는 아기의 이름을 듣고서도 갸우뚱거리기만 하다가 꾸역꾸역 잠을 청했을 뿐이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하나도 없다'라고 이름 지어진 아기 이후로는 더 이상 어느 누구도 그에게 대부가 되어 달라 부탁하지 않았다. 부탁은커녕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조차 전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쥐는 집밖으로 나가 이런저런 상황을 살펴볼 생각은 아예 없었다. 마침내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겨울이 들이닥쳤다.


"고양이야, 단지를 보관해 둔 곳으로 가자. 맛이 아주 근사할 거야."

"그래, 네가 그 맛을 보게 된다면..."

뻔뻔한 고양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함께 교회로 향했다. 그곳에서 텅 빈 단지를 마주한 쥐의 표정을 상상해 보라. 그제야 어리석은 쥐는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주 상세히...


'지금부터 쥐의 반격이 시작되겠구나' 하는 기대는 하지 말자. 이 이야기는 지독하게 회의적이다. 만약 이 이야기를 어린아이에게 들려준다면 엉엉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뭐 이런 이야기가 다 있어? 상당히 불쾌할 수도 있다. 동심을 파괴하는 잔혹한 이야기에 돌을 던지고도 싶겠지.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그림 형제 동화집은 그림 형제의 창작이 아니다. 오랜 시간 민간에 구전되어 떠돌던 이야기를 모은 책인데 듣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려는 마음 따위는 없는 것 같다. 옛이야기의 보편적인 전개 방식인 '권선징악'을 따르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보다는 강한 경종을 울리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야 알겠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대부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나갔을 때 네가 모조리 다 먹어치운 거야. 처음에는 윗부분을 다음에는 반을, 그리고 그다음에는..."


"입 닥치고 있는 게 좋을 거야! 한 마디만 더 했다가는 너를 잡아먹어 버릴 테니까!"


아뿔싸, 늦었다.

이미 쥐는 "모조리"라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쥐가 그 말을 하자마자 고양이는 쥐를 덥석 움켜 쥔 뒤 통째로 꿀꺽 삼켜 버렸다.


이야기의 백미는 바로 다음 문장이다.

여러분, 이게 바로 이 세상의 법칙이랍니다.


<종이 위에 연필, 누나 믿어>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물론 고양이야 그럴리 없지.

아주아주 영리한 내 고양이들도 이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잠시 하던 일 멈추고 생각해 보자.

분명히 무릎을 탁 치며 "있다, 있어." 할 것이다.

내 주변에 이렇게나 많은 고양이들이 나를 노렸구나.

개인과 개인일 수도 있고, 기업과 개인, 국가와 국가...

날로 독해지는 보이스 피싱도 그렇고

날마다 기가 막히게 영리해지는 AI도 나를 약탈하려는 고양이일 수도 있다.

그러니 자나 깨나 고양이 조심하자!



덧붙이는 글 :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가능한 단순한 책을 꺼내든다. 그림 형제의 동화집도 그중 하나다. 단순하다고 별거 없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다. 사람들의 윤색되지 않은 마음 씀씀이가 그대로 드러난 탓에 짧은 시간을 내어 한 편을 읽고 몇 며칠 곱씹게 된다.

이번 브런치북은 <현대지성> 출판사의 <어른을 위한 동화 그림 형제 동화 전집(김열규 번역)>을 읽고 곱씹은 것을 적으려 한다. 애써 번역하신 역자의 노고를 생각하면 함부로 그 문장을 옮길 수 없어 문장 그대로 인용하는 것은 최소한으로 하려고 한다. 210편의 이야기 전부를 싫은 완역본인 만큼 구입을 적극 추천한다.




#그림형제 #고양이와쥐 #옛이야기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