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누릴 자격
그림 앞에 선 관람객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심오한 뭔가가 있겠지? 그게 뭘까? 찾아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뚫어져라 살핀다. 아, 맞아. 그림은 멀찍이 서서 봐야 한다고 했지? 그래 뒤로 물러 서 보자. 그럼 보일 거야. 젠장,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 다시 앞으로... 돋보기라도 있어야 할까? 도대체 무엇을... 왜... 그린 거지?
저기 저 사람은 뭘 좀 아는 모양이군.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니.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테이블 위에 놓인 리플릿을 이리저리 살핀다. 도통 뭐라 하는지 읽어도 모르겠다. 하지만 표정은 "나도 다 알아." 하는 척이어야 한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의 그 아찔하고 황홀한 패션을 찬양하듯 말이다.
옛날에도 예술 운운하는 사람들을 꼴사납게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림형제 동화집에 수록된 <이상한 약사>라는 이야기는 대단한 예술가들이 마뜩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것 같다. 예술가랍시고 또는 예술을 좀 안답시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을 은근하게 조롱한다. 예술적 소양을 두루두루 갖춘 고상한 그들을 돌려 치는 재주가 어찌나 좋은지 어쩌면 호되게 맞은 줄 조차 몰랐을 것 같다.
그는 바이올린을 켜는 떠돌이 악사다. 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숲을 지나는 중이다. 생각할 거리가 떨어지자 홀로 숲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따분해졌다.
"곁에 좋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등에 메고 있던 바이올린을 내려 한 곡 켜기 시작했다. 과연 그 솜씨가 좋았나 보다. 숲 속 사방으로 울려 퍼진 소리를 듣고 누군가 덤불 속에서 걸어 나왔으니 말이다. 하... 이를 어쩐담? 사람이 아닌 늑대다.
"이런, 늑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당혹스러워하는 악사의 표정을 읽지 못한 눈치 없는 늑대가 성큼성큼 악사 가까이 다가왔다.
"오, 친애하는 악사님. 당신이 연주하는 그 곡은 참으로 아름답군요! 저도 그렇게 연주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하며 입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을 쏟아 냈다.
"쉽게 배울 수 있지."
악사가 대꾸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뭐든 시키는 대로 한다면야 어려울 것 없지."
그 말에 한껏 들뜬 늑대는
"오, 악사님. 악사님이 가르쳐 주신다면 선생님께 가르침 받는 학생처럼 착실히 배우겠어요."
했다.
혹시 그림형제 동화집의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염소>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다면
"분명히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야."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악사도 그래서였을까?
늑대는 악사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얼마 동안 함께 걷다가 이윽고, 속이 비고 가운데가 가로로 길게 갈라진 늙은 참나무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 앞에 멈춰 선 악사는 늑대에게 갈라진 틈에 두 앞발을 집어넣으라고 했다. 뭐든 시키는 대로 다 하겠노라 했던 늑대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 말을 따랐다. 그 순간 악사는 재빨리 돌멩이를 집어 들어 늑대의 두 앞발을 내리쳐서 나무의 갈라진 틈 깊숙이 두발이 박히도록 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거라."
고통스러워하는 늑대를 뒤로 한 채 악사는 유유히 제 갈길을 갔다.
뭐야? 이야기를 읽으며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늑대니까... 늑대는 포악스러울 거야. 그러니 그럴 수도 있지 뭐." 하고 꿀꺽 삼켰다.
또다시 홀로 걷게 된 악사는 금세 따분해졌다. 그래서 또 좋은 친구를 간절히 원했다. 그의 멋진 바이올린 연주에 이번에는 여우가 매혹되었다.
"아, 여우가 나오는군! 난 여우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하지만 악사의 그런 마음을 까맣게 모르는 여우는 늑대만큼이나 간절하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어 했다.
이번에도 악사의 대응은 늑대에게 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날 따라오렴."
뒤따르는 여우와 혼자라면 지루했을 숲 속 길을 얼마 간 함께 걸었다. 덕분에 따분함을 다소나마 덜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다. 오히려 이 놈을 어떻게 골탕 먹일까 궁리하느라 뿜어져 나온 도파민에 젖어 내내 짜릿했을 것이다. 키 큰 나무가 빽빽한 오솔길이 나오자 걸음을 멈추더니, 키 작은 개암나무 한 그루를 움켜쥐고 땅바닥 쪽으로 구부린 후에 여우에게 왼쪽 앞발을 내밀라고 했다. 바이올린을 배우려면 그렇게 해야 하나보다 했을 여우는 순순히 그의 지시를 따랐다. 악사는 그 발을 길 왼편의 개암나무에다 묶고 오른쪽 앞발도 내밀어 보라고 했다. 털끝만큼의 의심도 없는 여우는 그보다 더한 것을 시켜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악사는 오른편에 있는 개암나무에 그의 발을 묶었다. 두 발이 단단히 잘 묶여 있는지 확인까지 한 뒤 악사가 자신의 두 발로 누르고 있었던 양편의 개암나무들을 놔 버렸다. 그러자 나무들은 허공으로 튀어 올랐고 여우의 몸도 따라 올라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대롱대롱.
"내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쓰읍, 이상해."
이야기를 읽다가 잠시 멈췄다.
"늑대와 여우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래, 여우도 만만치 않아. 꾀가 굉장할 거야. 계략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내키지 않지만 악사를 이해하기로 했다.
아직 숲을 지나려면 멀었나 보다.
악사는 또 좋은 친구 타령을 한다.
어라, 이번엔 산토끼다.
옛이야기를 외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늑대에서 여우, 그리고 산토끼까지 비슷한 상황의 반복이라서 늑대가 나오는 장면 하나만 제대로 기억한다면 나머지는 꿀떡꿀떡 넘어간다. 반복적인 찰진 리듬덕에 옛이야기는 글이 아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중간중간 '얼쑤' 추임새를 더하면 이야기를 전하는 이도 듣는 이도 매번 처음인 듯 재미를 느꼈을 테다. 또 산다는 게 비슷한 일의 연속이기도 하거니와 오늘의 삶이 어제의 삶보다 크게 진보했다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반복적인 전개가 얼토당토않다 할 수만은 없다.
그나저나 불쌍한 산토끼는 또 어떤 봉변을 당했을까? 혹시 용궁으로 끌려갔던 토끼처럼 기지를 발휘하지는 않았을까? 기대를 말아야지.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봐도 잘못이라고는 악사만큼이나 근사하게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싶다는 것뿐인데 참으로 가혹하기 이를 데 없다. 차라리 "너 같은 놈이 무슨 바이올린 타령이냐."라고 호통을 쳐서 쫓을 것이지. 가르쳐 주겠노라 거짓으로 꾀어 막막하고 지루한 숲의 길동무로 이용만 하다가 결국에는 망설임도 없이 몹쓸 짓을 하다니 그에게 음악이란 예술혼과는 거리가 먼 한낱 잔재주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악사와 토끼는 빈 터가 있는 곳에 닿았고 그곳에 우뚝 선 포플러 나무 앞으로 갔다. 악사는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산토끼의 목에 긴 끈을 묶은 뒤 그 끈의 다른 한 끝을 포플러 기둥에 묶었다. 위대한 스승님이 하시는 일을 어찌 의심할 수 있을까? 깊은 뜻이 있겠지. 토끼는 그저 악사를 바라볼 뿐이다.
"자, 산토끼야. 깡충깡충 뛰면서 이 나무 주위를 스무 바퀴쯤 돌아라."
악사의 외침에 산토끼는 곧장 깡충깡충 뛰었다. 산토끼가 스무 바퀴를 돌자 목을 맨 줄도 스무 번 감겼다. 그 바람에 산토끼는 포플러 기둥에 찰싹 달라붙게 되어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토끼가 발버둥 치며 목에 감긴 줄을 당길수록 줄은 산토끼의 여린 목을 더욱 옥죄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악사는 그 말을 남기고 제 갈 길로 가 버렸다.
일찌감치 악사에게 당했음을 깨달은 늑대는 참나무에 콱 박혀 빠지지 않는 두 앞발을 빼내려고 오랫동안 애를 써야 했다. 마침내 발을 빼내는 데 성공했을 땐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
"내 그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야."
그 길로 악사를 쫓았다. 그때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울부짖는 여우를 발견했다.
"우리 형제인 늑대여, 나를 좀 도워줘요! 그 악사 놈이 나를 속였어요."
늑대는 여우를 구해주었고 둘은 복수를 다짐했다.
목에 줄이 감긴 채 포플러에 묶여 있는 조그만 산토끼 역시 구했다. 이제 악사는 그들 셋의 공동의 적인 셈이다. 악사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없었던 그들이 뭉쳤다.
이들의 연대를 까맣게 모르는 악사는 또다시 좋은 친구를 기다리며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아니면 운이 좋았을까? 어느 가난한 나무꾼이 그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나무꾼은 자기도 모르게 하던 일을 멈추고 음악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나무꾼을 보고 악사가 중얼거렸다.
"드디어 제대로 된 친구가 오는군! 난 짐승들이 아니라 사람이 와 주기를 기다렸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악사는 아주 아름답고 황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나무꾼은 마술에 걸린 사람처럼 멍하니 서서 그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무꾼의 가슴은 기쁨으로 차 올랐다.
그때 늑대와 여우와 산토끼가 그들 쪽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나무꾼은 그 짐승들이 나쁜 마음을 품었구나 하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요즘으로 말하면 악사의 열혈 팬인 셈이다. 악사를 위해서라면 그의 지난 행적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옥의 불구덩이라도 기꺼이 뛰어들 태세다. 그래서 날 선 도끼를 높이 쳐들고는
"이 사람을 상대하고 싶은 녀석들은 조심하는 게 좋을 걸. 먼저 나와 상대해야 할 테니까."
하고 악사 앞에 우뚝 섰다.
이야기의 끝은 내가 읽었던 책 그대로를 옮긴다.
<현대지성 출판사의 그림형제 동화전집 >
이렇게 맹탕일 수가. 끝이 왜 이 모양이지? 개운치 않은 뒤끝이 영 찜찜했다. 열린 결말이랍시고 관객에게 다 던져주고 당당하게 올라가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노려보며 자막이 다 올라가고 나면 있을지도 모를 결정적인 한 컷을 기다리듯 이야기의 마지막 단락을 보내지 못하고 붙들었다.
이야기를 접하는 이들마다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옳고 그름과는 무관하게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기억하고 있을 "위다"의 소설 <플랜더스의 개>를 떠올렸다.
이야기 속 주인공 네로는 화가를 꿈꾸지만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타고난 재능으로도 한결같은 부지런함으로도 가난을 이길 수 없었다. 선한 마음조차도. 버려질 송판에 목탄으로 그림을 그려 대회에 제출했지만 초라한 재료 탓에 외면당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대회 관계자들은 이를 바로잡으려 했으나 너무 늦었다. 네로의 또 다른 꿈은 마을 성당 안에 걸려 있는 루벤스의 두 작품을 보는 것이었다. 그림은 늘 언제나 휘장으로 가려져 있었다. 돈을 내야 그림을 볼 수 있었기에 휘장에 가려진 그림 앞에서 소원을 들어 달라 기도 할 뿐이다. 죽기 직전에야 비로소 네로는 이 그림들을 보게 된다. 여전히 돈은 없었다. 그래서 깊은 밤 몰래 성당에 들어가 그림을 가린 휘장을 걷어내고 창을 통해 스며든 달빛으로 그림을 보았다. 그리고 그 앞에 쓰러져 영원히 잠들었다. 그가 간절히 보고 싶어 했던 그림은 아이러니하게도 루벤스의 종교화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였다.
소설 속 이야기라 이 모든 일이 허구일 것 같지만 실제로 그랬단다. 1872년 처음 출판된 이 소설은 영국인인 위다가 벨기에의 플랜더스에서 머물며 겪었던 경험들을 담아 지은 이야기라고 한다. 안트베르펜 대성당 안에 걸린 루벤스의 그림을 보려면 돈을 내야 했다. 위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예술조차 허락되지 않는 그 당시의 분위기에 염증을 느꼈고 그때의 슬픈 경험으로 그림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요즘 AI는 그림도 잘 그리고 노래도 잘 만들고 시인처럼 시를 짓기도 한다. 제법 근사하다. 아직은 디지털 작품들이지만 머지않아 소위 말하는 피지컬 AI 덕에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로봇이나 사람처럼 악기를 연주하는 로봇과 마주하는 날도 오게 될 것 같다.
흔히들 사람과 짐승을 구별 짓는 그 무엇을 운운하며 사람이 짐승보다 낫다 자신하는데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경구가 말해주듯이 딱히 그들보다 나을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사람 아닌 동물과의 비교는 아무것도 몰랐던 옛 시절에나 통할 법하다. 그보다는 사람이 AI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일까? 물어야 할 것 같다. 사람의 창작물과 AI의 창작물을 어떻게 구별 지어야 할까? 조만간 기술적인 면에서는 사람을 앞지를 것이 뻔할 테니 말이다. AI는 품어보지 못할 삶 그것이 답이 되지 않을까?
옛이야기의 해석은 저마다 다를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그래서 위의 글 역시 나의 생각일 뿐이지 정답은 아니다. 그저 나는 악사의 맹목적인 팬이 된 나무꾼의 광기 어린 난동에 쫓기는 동물들이 어느 순간 서로를 바라보며 한바탕 자지러지게 웃었을 것 같다.
"인간들의 예술? 별 거 아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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