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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쟁이 Feb 18. 2023

내 안의 엄마

나의 엄마(4)

유성생식은 유전자를 섞는다. 이것은 개체의 몸이란 일시적인 유전자의 조합을 위한 임시 운반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개체에 들어 있는 유전자의 조합은 일시적이지만 유전자 자체는 잠재적으로 수명이 매우 길다. 유전자의 길은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진다. 한 개의 유전자는 수많은 개체의 몸을 연속적으로 거쳐 생존하는 단위라고 생각해도 좋다.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내 몸의 절반은 엄마에게로부터 왔다. 엄마 몸의 유전자는 엄마의 죽음과 함께 역할을 다했지만 내게 남겨진 엄마의 유전자가 아직 살아 있다. 때문에 내 안에 엄마가 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시간의 끝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잘 살아야겠다 다짐했다.



2023년 2월 5일 밤 11시 20분 무렵.


병원에 도착했다.

엄마가 계신 병실을 향해 뛰다시피 바삐 걸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아직 잘 모르겠다. 나에게 벌어진 일의 무게를.

슬프지 않냐고? 그것도 잘 모르겠다.

모든 감각이 일시에 마비된 느낌.

그저 빠르게 몸을 움직일 뿐이다.

엄마에게로 가야 하기에...


병실에 도착했다.

나와 남편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울기를 멈추고 있었다.

이미 지쳐 잠시 쉬려는 듯 힘없는 모습으로 병실 한켠을 지키고 있었다.


나의 시선은 곧장 하얀 침대 위에 하얀 이불을 반쯤 덮은 채 누워 있는

엄마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달려가

와락 엄마를 끌어안았다.

믿을 수 없다. 내 엄마가 죽다니.

이건 말이 안돼도 너무 안 되는 일이다.

이렇게 갑자기 엄마를 놓치다니.

숨을 거둔 지 이미 4시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 엄마는 따뜻했다.

(나의 시어머니는 엄마가 너를 기다려주신 거라 하셨다.)

엄마의 매끈한 이마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이마도 아직은 따뜻하다.

희끗희끗 하지만 숱 많고 굵은 머리칼도 힘이 있었다.

슬며시 엄마를 흔들어 보기도 했다.

혹, 깨어나시지 않을까?

굳게 감긴 눈은 스스로 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의 몸을 구석구석 주물러 보기도 했고

엄마의 입술을 더듬어 보기도 했다.

우리 엄마 계속 주무시려나 보다.

그 순간 엄마의 표정이 보였다.

어른이 되어서 보았던 엄마의 표정 중 가장 편안한 모습이다.

안면의 모든 근육이 부드럽게 풀어져 있었다.

좋으실까? 좋으신가 보다.

그래도 이렇게 가시는 게 어딨어.

 



나의 엄마는 나의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후

그러니까 대략 16년 전쯤.

갑작스레 휘몰아친 어지러움증 때문에

동네 병원에 갔었다. 그 병원에서는 중형 병원으로 엄마를 보냈고.

중형 병원에서는 혈액 검사 후 충남대학병원 응급실로 바로 이송했다.

응급실에 들어가고 나서야 아빠는 나에게 전화하셨다.

"엄마, 응급실에 들어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엄마는 곧장 무균실로 입원하셨다.

예상되는 병명은 "급성 백혈병"

그때 우리 가족 모두는 엄마를 잃는가 보다 했다.

매일매일이 검사의 연속이었다.

정밀 검사 끝에 다행히 엄마가 급성 백혈병에 걸린 것은 아니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다행이다.

그러면 무슨 병이란 말인가?

예상되는 병은 다음 세 가지 중 하나.

"골수이형증후군(골수암), 재생불량성 빈혈(악성 빈혈),

그리고 이름도 생소한 발작성야간혈색소뇨증"


엄마의 진단명이 특정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운 좋게도 백혈병은 아니었고, 재생불량성 빈혈이 아닐까 했었다.

퇴원 후에도 한동안은 "재생불량성 빈혈"로 알고 있었다.

그 뒤로도 충대병원에 여러 번 입퇴원을 하셨다.

그 과정에서 엄마가 콜라색 소변을 눈다는 사실을 알았다.

최종적인 진단명은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

교수님은 불행 중 다행이라 했다.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은

이름처럼 병이 아니라 일종의 증상이다.

적혈구 세포막을 구성하는 단백질 성분을 생성하는 X-염색체의

돌연변이로 정상 수명 120일의 적혈구가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일찍 파괴된다. 골수가 적혈구를 만들어내는 속도보다 파괴되는

속도가 빠르면 빈혈이 나타난다.

희귀 난치병이었던 이 병의 치료약은 딱히 없었다.

혈전을 예방하기 위한 아스피린과 일종의 영양제였던 엽산이 전부였다.

국내에 300여 명의 환자가 있단다.

몇 년 전쯤 치료약이 개발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하지만 그림의 떡. 일 년 약값이 억대가 넘었다.

얼마 전부터는 의료보험도 된다 했었다. 그래도 억 소리 나는 금액.

그나마도 아무나 혜택을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엄마의 경우에는 교수님이 여러 번 시도하셨지만 매번 불발되었다.

임상실험에 참여하고자 했던 시도 역시 불발.


악화를 막기 위해

엄마는 매월 정기적으로 혈액 검사를 받으셨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2주에 한번)

죽어나가는 피가 너무 아쉬운데 검사를 위해서

매번 6~7개의 주사기에 피를 꽉꽉 채워 뽑았다.

뽑은 피로 각종 수치를 확인하고 수혈 여부를 결정했다.

처음에는 2개월에 한 번씩 수혈을 받으셨다.

그러다 최근 몇 년 전부터는 4주에 한 번씩 수혈을 받으셔야 했다.

자연히 담낭이나 신장도 버거웠다.

그때는 응급으로 입원하셨어야 했다.

평소 약하셨던 방광도 문제였다.

조금만 힘드셔도 엄마는 방광염으로 온몸이 불덩이가 되었다.

버티다 버티다 병원에 가시면 이미 신장까지 염증이 생긴 상태.

그래서 교수님도 우리도

참지 말고 무조건 병원에 가실 것을 권했다.


수혈받는 것도 많이 힘들어하셨다.

수혈을 받기까지 병원에서 대기해야 하는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수혈을 받으시면 며칠은 앓으셨다.

(오전 7시 50분 무렵 병원에 도착하시면 채혈을 한다.

그리고 심전도 검사를 비롯한 여러 검사가 진행된다.

혈액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이윽고 검사 결과가 나오면 오전 11시 교수님 진료 시간이다.

교수님은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수혈 여부를 판단한다.

만일 수혈이 결정되면 혈액이 오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대략 2시간 정도. 오후 1시 무렵 드디어 수혈이 시작된다.

수혈이 완료되기까지는 4시간가량 걸린다.)

장기 이식의 부작용처럼 수혈로 이한 부작용도 있었다.

원래 내 몸의 피인 양 믿게 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잦은 수혈은 신장을 지치게 했다. 철분이 지나치게 쌓여

철분을 배출시키는 약을 드셔야 했는데 엄마는 그 약을 참 힘들어하셨다.



고요히 누워 계신 엄마의 얼굴이 참 곱다.

우리 엄마는 서구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미인이시다.

작고 갸름한 얼굴형, 쌍꺼풀 깊은 두 눈,  

깎아지른 듯 딱 떨어지는 높은 콧대.

살짝 짱구인 시원스러운 이마.

그럭저럭 웬만큼 사는 집의 막내였던 엄마는

결혼 후 가난한 삶에 찌들어 얼굴에는 미소보다는 그늘이 더 많았었다.

자식들 다 키워 시집, 장가보내고 손주들 한창 이쁠 무렵,

그래서 이제는 좀 웃고 살아야지 할 무렵

엄마는 병을 얻으셨다.

그때부터는 매일매일 통증을 견디셔야 했다.

마지막 숨을 터뜨려 버린

그리고 두 번 다시 숨을 들이쉬지 않아도 되는 지금 이 순간,

엄마의 얼굴은 참으로 고왔다.

앳된 새색시 마냥 고왔다.

"우리 엄마 참 이쁘네."


그리고 나는 우리 삼남매중

엄마와 가장 많이 닮았다.

 AB형인 혈액형 조차도 동일했다.

때문에 엄마의 조혈모 세포의 DNA를 검사할 때

나의 혈액을 대조군으로 함께 검사했다.



오래전, 서투른 그림이라 엄마에게 보여드리지 못했던 그림. 잘 그리게 되면 다시 그려야지 했는데 그걸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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