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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쟁이 Apr 17. 2023

개장을 결심하다

나의 엄마(10)

매장을 한 자는 매장 후 30일 이내에 매장지를 관할하는 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장지 등에 관한 법률 제8조 1항)


"누나, 엄마 묘지 관련해서 신고해야 한다네.

급할 거는 없고 5월 초에 내가 OO면에 다녀올게.

그때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뭔지만 좀 알아봐 줘."


엄마를 모신 지 한 달이 조금 더 지났다.

동생의 전화는 오전에 받았지만

급할 거 없다고도 했고

나 역시도 여러 가지 일들로 바빴기에 잊고 있었다.

그러다 오후 4시 무렵... 노트북을 펼치고 일을 하던 중

퍼뜩 생각이 났다. 무슨 신고를 해야 한다는 것일까?

무슨 신고인지를 알아야 필요 서류를 확인할 수 있을 텐데...


분묘신고? 묘지 관련 신고? 산소관련해서 신고.... 등등.

한참을 이렇게 저렇게 검색어를 넣어보며 찾아보았다.

그러다 눈에 띄는 단어 "매장신고"


그렇다 사람이 죽어 매장을 하게 되면 "매장신고"를

해야 하고 납골당에 봉안을 하게 되면 "봉안신고"를 해야 한다.

처음 겪는 일이었고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기에

전혀 몰랐다. 이런 절차가 있는 줄...

만일에 시립추모공원에 모셨더라면

그쪽에서 필요한 절차를 안내해 주었겠으나

우리는 집안의 선산에 모셨다.

그렇게 형식적인 모든 장례절차가 끝나는 것이라 여겼다.


'그렇구나. 매장신고를 해야 하는구나.'

부랴부랴 매장신고 절차를 확인했다.

그런데...

아뿔싸!! 이를 어째???

매장 후 30일 안에 하여야 한다고?

이를 위반하면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얼른 달력을 확인해 봤다.

이미 기한을 수 일 넘겼다.

곧바로 동생에게 전화했다.

"왜 이걸 이제야 이야기했니?

이미 신고 기한을 넘겼잖아."

"그래? 누나?"

"너는 누구한테서 들었어?"

"오늘 아침에 아버지랑 통화했는데, 아버지가 신고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

"그걸 왜 이제야 말씀하셨대?"

"..."

"내가 찾아보니까 인터넷으로도 할 수 있는 모양이더라. 내가 신고 절차 확인해 볼게. 그리고 매장일을 실제보다 좀 뒤로 미루어 신고하자."

속이는 것은 깨름찍했지만 다른 수가 없다 판단했다.

곧바로 '정부 24'에 접속했다.

'매장신고'로 검색하니 신고 화면이 바로 뜬다.

간단한 간편 인증 절차로 쉽게 처리할 수 있을 듯 싶었다. 인터넷으로 신고하는 경우 필요한 서류는 오히려 간단했다. 신고자에 관한 필요서류는 관련부서에서 열람할 수 있도록 동의해 주면 최종적으로 필요한 서류는 엄마의 '사망진단서'와 '묘지사진' 정도였다.

그리고 묘지 소재지의 주소를 알아야 한다.

곧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필요한 서류를 업로드하고 마지막 주소지만 입력하면 된다.

이제 곧 휴우~~~ 안도의 숨을 내 쉴 수 있을 터였다.

주소지를 검색하고 입력 버튼을 누르면

모든 게 끝일테니...

'OO북도 OO시 OO면 OO 리 산 196-1번지'

...

'인터넷으로 처리할 수 없는 주소지입니다'라는 뜻의

메시지 창이 뜬다.

무슨 소리야? 다시 입력해 본다.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메시지가 반복해서 뜬다.

분명히 주소는 정확하게 입력했다.

'아니,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 인터넷으로 처리가 왜 안된다는 말이야?'


결국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누르기 싫은 1588을 눌렀다.

예상대로 연결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견디어야 했다.

이러저러한 멘트들이 나왔지만(대충 지금 모두  바쁘니 다음에 하라는 내용)

나는 스피커를 켜 놓은 채로 상담원과 연결될 때까지 버티고 버티었다.

마침내 연결되었다.

자초지종을 상담원에게 이야기했고

상담원은 묘지 소재지를 물었다.

주소를 불러주자 조금 기다려보라 하더니

"이 주소는 직접 OO시청으로 가셔야 합니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가시기 전에 OO시청에 전화해서 필요 서류를 알아보라 했다.

필요한 서류가 많을 거란다.

"OO시청 전화번호는요?"

"그건 직접 찾아보세요."

"..."


'무슨 소리야? 왜? 그곳이 그렇게 오지란 말이야?

인터넷이 안 되는 곳이야?'

일단 시청 전화번호를 검색하고 전화를 걸었다.

또 ARS. 그래도 금방 연결되었다. 다행이다.

공공기관 퇴근 시간이 코 앞이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오늘 내에 이 일을 처리할 것이다.

그러나 담당자의 대답은...

"그곳은 OO면으로 직접 전화하세요."

'젠장... 이럴 거면 처음부터 OO면으로 전화하라고 할 것이지.

시간도 별로 없는데..."

그래도 나은 것은 OO시청에서는 OO의 매장신고 관련 담당자의 전화번호를 직접 가르쳐 주었다.

지체하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상황을 설명했다.

음... 담당자가 잠시 자리를 비웠단다.

나는 사정을 했다. 아주 급하다고. 오늘 내로 신고를 끝내야 한다고.

"전화번호를 남겨주시면 담당자에게 곧바로 전화드리라 하겠습니다."

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혹여 신고를 제때에 하지 못할까 불안할 뿐이다.

오래지 않아 핸드폰 진동이 요란하다.

나는 동일한 이야기를 네 번째 반복했다.

담당자는 묘지가 있는 곳의 주소를 다시 물었다.

"OO북도 OO시 OO면 OO 리 산 196-1번지요."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키보드를 치는 소리가 들린다.

'뭐야? 인터넷 되는 거야? 그런데 왜 인터넷으로 처리가 안된다 그러지?'

"여보세요? 음.. 일단 측량을 먼저 하셔야 해요... 그리고..."

"네? 뭐라고요? 측량을 하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그곳은 저희 집안 문중 산이예요. 그리고 그곳에는 이미 다른 분들을 모셨고요.

저희 엄마가 이번에 들어가신 거예요."

"어떻게 매장하셨어요?"

"화장을 해서 목함에 모셨어요. 평장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리고 표지석 세우고요."

이후로도 한참을 담당자와 서로 방향이 어긋나는 대화를 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담당자는 해당 주소지가 묘지로 허가 또는 신고가 된 곳이 아니니  '문중 묘지'의 허가 또는 신고절차를 안내해 준 것이었다. 내가 이를 알아들었을 리가 없다.

나의 필요는 묘지 신고가 아닌 매장 신고였으므로...

마침내 내가 알아들었다.

'우리 엄마를 모신 묘지는 한마디로 불법묘지였다.'

담당자가 묻는다.

"혹시... 본 사람 있어요?"

"네???"

"매장하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봤냐고요."

"아... 저희 집안 어른들뿐이죠."

"그럼, 이 전화 받지 않은 것으로 할게요."

이어지는 담당자의 푸념...

"이제 젊으신 분들은 이렇게 하시면 안돼요.

여기에는 너무 많아요. 이런 분들이요."

"사실... 저는 처음부터 내키지 않았어요. 집 가까운 곳에 추모공원도 있는데  선산이라고 이 외진 곳까지 와서 모셔야 하나 많이 울었거든요. 다음에 아빠 사후에는 모시고 나갈게요."

"그때는 개장신고 하시고 모시면 됩니다."

"개장신고요? 매장신고를 못했는데 그게 되나요?"

"매장신고가 안된 묘지도 개장신고 가능해요.

인터넷으로 하실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잠시 상황을 정리해 봤다.

인터넷으로 매장신고를 할 수 없었던 까닭은

그곳이 인터넷이 안되어서가 아니라

주소지가 묘지로 등록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이 사실을 동생들에게 알렸다.

그리고 이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우리... 엄마를 어떻게 모신 거니?

남들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암매장한 거니?

아무래도 급한 일 끝내면 올해 안이라도

엄마 다시 모셔야겠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사설묘지의 설치 등)
4항. 가족묘지, 종중, 문중묘지 또는 법인묘지를 설치・관리하려는 자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묘지를 관할하는 시장등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받은 사항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변경하려는 경우에도 또한 같다.

제16조(자연장지의 조성 등)
3항. 가족자연장지 또는 종중・문중자연장지를 조성하려는 자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관할 시장등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신고한 사항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변경하는 경우에도 또한 같다.

**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사법이 아닌 공법이다. 위반 시 당연히 벌칙 조항이 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 법의 전문을 찾아보았다.
(연혁도 함께)
과거 모든 장지의 조성은 시신묘지든 화장묘지든 모두 허가 사항이었다.
2013년 화장을 장려하기 위해 자연장지의 조성은 신고사항으로 완화했다.
다시 말해 과거의 경우 묘지 조성에 관한 법이 더 엄격했던 것이다. 또한 '매장신고' 역시 '할 수 있다'가 아닌 '하여야 한다'는 의무 사항이었다.
하지만  신고 기한을 따로 정하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매장 후 100년 뒤에 하겠다 해도 뭐라 할 수 없었다.
즉, 있으나마나 한 법이었다.
그 법이 2000년 1월 전면 개정되어 30일 이내에 신고하여야 한다고 정했다.
법이 강화 된 것이다.
그리고…
법에 따라 매장신고를 하려면 매장지가 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등록된 곳이어야 한다.
즉, 묘적부라는 것이 있어서 전국의 묘지가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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