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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Jun 15. 2024

한국인의 개떡

눈치코치

방랑의 시간이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요??

무엇을 위해 나는 여기에 있나요? 

신께 끊임없이 질문했다. 

응답이 없는 시간이 길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하루 세끼를 챙겨 먹고, 아기 기저귀를 사 오며, 저녁이면 남편을 재웠다. 

오후 5시경의 저무는 해를 보며 한동안 말없이 서있는 날이 많아졌다.

불평을 일삼는 날들에 내 인생도 불행해졌다. 


감사한 분의 권유로 온라인 한국어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재택근무이고 수업이 있을 때만 하면 되기에 가정일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일은 내 삶에 엄청난 활력을 가져다주었고, 중국 각지의 학생들을 접하며 자연스레 중국에 대한 이해가 늘어났다. 기초가 부족한 학생을 위해 중국어로 수업 준비를 하다 보니 내 중국어 실력은 날로 늘었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온라인으로 '한국어교원' 자격증을 준비했다. 복수학위 과정으로 2년간 대학생이 되어 공부와 실습을 병행했다. 


한국어 교육 플랫폼 대표 강사가 되었고, 신입생들의 시범 수업은 거의 내가 담당했다. 난 특별하게 잘한 게 없는데도 학생들은 좋은 평가를 남겨줬다. 감사했다. 그 덕분에 연변티브이에 나와 우리 민족과 우리말에 관해 인터뷰도 할 수 있었다.

한국어를 가르쳐 본 적이 있나요?


한국어는 가르치기 결코 쉽지 않은 언어이다.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며 내가 학생이 아닌 것에 감사했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자연스럽게 습득했기에 망정이지, 학습으로 터득해야 했다면 지레 나자빠졌을 것이다. 지금도 그것을 정말 다행으로 여긴다. 

한국어는 정말 쉽지 않다. 어렵다기보다는 아주 짜증나게 하는 스타일이다.


- 은/는/이/가 

- 을/를.

- 이에요/예요/아니에요

아주 기초 문법 몇 개만 나열해 보면 이렇다. 앞글자의 받침 유무에 따라 조사를 달리하는 것은 외국인들에게 너무도 생소하고 난감한 일이다. 매 순간 머릿속에 글자를 그려보며 조사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

많은 학생들이 지름길을 묻지만, 방법이 없다. 자주 연습해서 익숙해지라는 말밖에 할 수 없어 미안했다.


그 많은 동음이의어는 또 어떤가. 

'이'의 의미는 막 떠오는 것만 생각해도 대략 5가지다. 

(머릿니, 치아, 숫자 2, 사람, 지시대명사...)


한국어하이콘텍스트 언어라고 한다. 문맥 상황과 발화자의 의도를 파악해야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위의 5가지 의미 중에 외국인이 어떻게, 빠르게, 상황에 맞게, 정확하게 선택하여 이해할 수 있으랴.

이 문턱에서 많은 외국인 학습자들이 공부를 포기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에만 유일하게 '눈치'라는 단어가 있다고 한다.

타동물에게는 없고 인간에게만 있는 몇 가지 중에 '눈의 흰자위'가 있다. 수영장에서 남자들이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는 것을 생각해 보라. 인간은 눈의 흰자위가 있기에 다른 사람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알 수 있다. 이는 하이콘텍스트 언어인 한국어에 꼭 필요한 눈 언어(눈치)를 가능하게 한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눈치는 한국인에게 절대 필수 중요 요소이다. 

왜냐, 한국어는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때문에, 말 한마디에 천냥빚을 갚을 수도, 천냥 빚을 질 수도 있다. 

하여 늘 언사에 조심해야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래 사귄 사람이라면 상대가 뭐라고 하는지 오해하지 않고 알아들어 준다.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의 어머니들은 절대 키친타월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에게 키친타월이라는 단어는 없다. '치킨타월'만 있을 뿐

우린 그저 찰떡같이 알아듣기만 하면 된다. 


오래전 라디오에서 들은 사연이 생각난다. 

나이가 지긋한 택시 기사가 어느 날 본인과 비슷한 노인 손님을 태운다. 

손님: "전설의 고향에 좀 갑시다."

택시 기사는 묻고 따지지도 않고 손님을 예술의 전당으로 모셔다 드린다. 

기가 막힌 라임이다.


눈치라는 축복. 

말하지 않아도 아는 눈치.


주말이다. 

생각나는 누군가에게 연락해 보자.


"오늘 저녁 모히또에서 몰리브 한 잔 어때?"




글, 사진 엄민정

상하이 거주 13년.

한국의 김치와 상하이의 샤오롱바오처럼 익숙한 것들을 다시금 들여다보며 의미를 찾는 일에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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