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인연은 당신이 거절한다고 떠나지 않아요.
결혼 전 직장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대학 때 연수로 가있던 캐나다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종종 한국에 놀러 오곤 했는데, 그날은 친했던 홍콩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서울에 온다며 만나자는 친구에게 나는 며칠간 우리 집에서 머무르며 여행하기를 제안했고, 우리는 공통의 추억을 되짚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친구는 한국이 좋았는지, 나의 환대가 좋았는지 그 후로 자주 한국에 왔고, 올 때마다 매번 당연스럽게 우리 집에 머물렀다. 주말에 무료한 시간을 함께 보낼 친구가 있으니 좋은 점도 있었지만, 누군가의 초대와 환영에 너무 긴 시간 머무는 친구가 언젠가부터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와서 거의 한 달가량을 머물기도 했는데, 직장을 가야하는 상황에서 손님을 집에 놔두고 출근하는 것이 여간 깨름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달을 머물고 돌아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놀러 오겠다는 연락에 그간의 피로가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애매모호하게 답변을 남기고 돌아선 내게 친구는 더 이상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연락을 하지 않았는지, 하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심전심이 되었던 것은 분명했다. 거절을 했다면 이어졌을 인연은 거절을 못해서 끝이 나고 말았다.
미움받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 거절하지 않는 것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인 줄 알았던 시절이었다. 나의 거절에 대한 상대의 거절감을 미리 걱정하여 피곤한 예스맨으로 살던 시절이었다.
"자기는 큰 장점이 있더라. 뭐든 해보겠다고 하니 말이야. 그게 얼마나 귀한지 몰라."
먼저 해보겠다고 한건 아니었다. 해보겠냐는 물음에 거절을 못한 것이지.
교회 권사님의 제안에 무턱대고 맡은 봉사는 잘하지도 못하면서 내려놓지도 못하고 8년의 시간이 흘려보냈다. 내려놓고 싶은 마음은 행사를 앞둔 부담과 함께 이따금 찾아왔는데, 초심을 잃어버린 봉사는 어느새 의무가 되어 제풀에 지치기를 반복했다. 타의로 호기롭게 시작한 일이 종국에 의미도 보람도 찾지 못한 채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일이 허다하다. 내적 자아는 익숙해진 나에 대한 거절감으로 소리 죽인 채 오래 웅크리고 있었다.
주변에 굳건하게 제 일들을 잘 해나가시는 분들을 보면 마음이 행동과 같은 길을 간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마음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했다. 그들의 거절에 어떠한 기술이 녹아들어 있는지, 그들에게 거절을 받는 일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 대한 존중과 솔직함으로 다가왔고, 이어지는 생각의 가닥들이 그들의 거절 덕분에 간단하게 정리가 되기도 했다. 그들은 거절에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자신의 속마음을 상대에 오해 없이 전하기 위해 진심을 담아 거절하였을 뿐이다. 이러한 관계는 서로 간에 보다 튼튼한 유대관계를 이루게 해 너그러운 이해심으로 이어졌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얼굴이 두꺼워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남의 부탁에 거절할 수 있는 표정을 갖자는 의미이다. 거절은 처음엔 나를 위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상대를 위하는 일도 된다. 흐릿한 의사표현은 원치 않는 상황을 종종 연출하기 때문에 맺고 끊음을 깔끔하게 할 수 있는 사람과 교류하는 것은 불필요한 감정 소모와 시간 낭비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주변의 부탁이 선을 넘을 때가 종종 있다. 몇 년 전, 친구가 온라인 시험을 대신 봐달라고 부탁했을 때의 난처함이 아직도 그와 나의 우정을 의심하게 만든다. 아끼는 사람을 나로 인해 곤란에 빠뜨리게 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더군다나 대리시험은 부정한 것이기에, 누구에게도 부탁하면 안 되는 범죄행위임을 나는 그 자리에서 명확히 지적했다. 친구라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려 드는 의도에 크게 실망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선을 넘는 사람은 다시 선을 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오늘 새벽 도착한 문자 메시지에 난 그날의 황당함을 다시 느꼈다.
"남편이 고향에 차를 끌고 가서 말이야... 오늘 고객들 몇 분 모시고 어디 좀 가야 하는데, 혹시 오늘 차 쓰니?"
돈 쓰는 건 싫고 내 차를 빌려달라?
"택시 타는 게 쌀걸?"
그녀의 운전 실력을 빗댄 우회적 거절에 더 이상의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내 마음이 편한걸 그간 왜 망설이고 못했는지 요즘 부쩍 편해진 마음의 연유를 거기에서 찾아본다. 나의 거절 연습이 몇 차례의 실전을 거쳐 걸음마를 떼고 아장아장 걷는 수준에 이르렀다.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거절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최선이겠지만, 상대방의 기분을 걱정하느라 거절하지 못했던 내 마음이 이제는 단호해지기로 결심했다. 좋은 인연은 그러함에도 여전히 곁에 있어줄 것을 믿기에 앞으로 더 용기를 내보기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