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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Dec 13. 2024

모르면 어려울 수 있지.

익숙함과 생경함이 대립할 때

용기 있는 자는 비겁함으로 내려가 그 한계에 접하는 것보다 무모함으로 올라가 그 한계에 이르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욕심쟁이보다 낭비가가 관대해지기 훨씬 쉬운 것과 같은 이치로, 무모한 자가 진정으로 용기 있는 자가 되는 것이 비겁한 자가 진정한 용기로 오르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 돈키호테 2, p.236,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


비겁함과 무모함이라는 극단적인 악덕 사이에 놓여 있는 미덕에 관해 이야기하던 돈키호테가 있다. 그의 말에서 종교적 문제를 대하던 너와 나의 입장차이가 물속에 잠긴 풍선과 같이 떠올랐다. 때는 신자인 나와 비신자의 남편의 사이에서 나온 딸아이의 유아세례를 앞두고 있었다. 


평생을 거쳐 제사와 차례를 가까이서 보고 행해온 유교 보이 남편과 결혼한 후, 내게 요구되는 의무에 대해 환멸을 심심찮게 느끼곤 했다. 그날이 되면 조상이 귀신이 되어 집에 돌아오고, 그런 조상을 환영하는 의미로 문을 열어놓고, 등을 돌려 식사를 방해하지 않는 등의 행위를 미개하게 느꼈음을 고백한다. 육신을 채우기 위해 먹는 음식을 영이 된 조상이 먹을 리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음식의 영은 조상이 먹고 실제 음식 후손이 먹는다는 개념을 애써 아는 척하며 지내온 시간이 짧지 않다. 


유아는 자기의 뜻으로 세례를 받을 수 없기에, 유아세례에서는 부모가 아이의 의견을 대신하게 된다. 한쪽 부모 이상이 신자일 경우 아이는 유아세례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춘다. 단상 앞에서 목사님의 물음에 '예'라고 대답해야 할 질문들이 나와 남편의 입을 거쳐 동일한 답으로 응답되었다. 한쪽의 양보와 존중이 필수적인 만큼 논점은 언쟁이 되지 않고 그 순간 일치가 되었다.


신자가 자식을 세례 받게 하기는 쉬우나, 비신자가 그러하기는 쉽지 않다. 세례 당일, 양장을 차려입고 구두에 발을 끼워 넣는 남편의 걸음이 나의 걸음과 다름은 분명했다. 



올해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군시절 성탄절마다 초코파이를 타먹던 남편은 성탄절에 교회 가는 것은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분위기를 이어서 송년예배에도 함께 참석을 권해보지만, 세상의 송년회가 익숙한 이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운 일임을 안다. 본인은 믿지 않으나 자식에게 세례를 받게 하는 아버지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리 없다. 남편의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에 조급함과 다급함을 내려놓기로 했다. 나와 딸아이의 신앙생활을 박해하지 않고 방해하지 않는 것으로 이미 큰 걸음을 내디딘 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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