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온도
삐약삐약삐약.
초등학교 교문 앞 삐약 소리가 하교 중인 삐약이들을 불러 세운다. 동그랗게 둘러싼 어린이 무리 틈사이로 몽글몽글하고 연 노란빛이 새어 나온다. 머리를 안으로 모으고 엉덩이를 밖으로 내민 아이들의 뒷모습은 다른 아이들의 발걸음도 멈추게 했다. 종이 상자 안에 담겨 순진한 얼굴로 어미를 찾고 있는 생명체가 구구구구 어미 소리를 본능적으로 기다리고 있다. 서있기도 비좁은 상자 안에서 바라보는 하늘엔 동그란 눈들이 깜빡거렸다.
"신기해. 귀여워. 만져봐도 돼요?"
연약한 병아리들을 이놈저놈 만져보게 할 순 없으니 아저씨는 한 마리에 100원이라고 대답을 대신한다. 온종일 주머니 속에서 새 나오는 동전 부딪히는 소리는 하굣길을 기다리게 했다. 새콤달콤은 포도맛이 제일 맛있었다. 하나씩 포장을 벗겨 까먹으면서 출발하면 마지막 일곱 개째를 먹을 때 집에 거의 도착하곤 했다.
노랗고 동그란 것을 내 손에 담아보고 싶은 마음에 동전 200원은 본래 의도를 깡그리 잊었다. 주저 없이 내민 200원에 아저씨는 두 마리를 아무렇게나 골라 봉지에 담았다. 황토색 사료를 담은 조그만 지퍼백도 함께 넣어주었다. 손에 들어와 발을 동동거리는 뽀송하고 보드라운 솜털은 손이 쓰다듬는 뱡향으로 뉘어졌다 다시 일어났다.
한 번쯤 일어날 일이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는 표정의 엄마가 하굣길의 나를 맞았다. 엄마는 속으로는 한숨을 쉬었을 테지만 겉으로는 나만큼이나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창고에서 아빠 구두 상자를 가져와 신문지를 깔고 봉지 안에 담겨 멀미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병아리 두 마리를 조심스럽게 옮겨 담았다. 사료를 쪼아 먹고 물을 머금고 하늘을 바라보며 삼키는 모습이 귀엽다며 나는 연신 키득거렸다. 재밌고 신기한 일도 한 시간을 지속하기는 어려웠다. 분산된 집중력이 병아리 앞에만 앉아있는 것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병아리는 오후 내내 쉼 없이 삐약거렸고, 나는 해가 질 때까지 학원 뺑뺑이를 돌고 들어왔다. 비교적 팔팔한 놈 옆에 다른 한 마리가 기운을 잃고 자주 주저앉았다. 처음부터 비실대는 낌새가 있던 아이다. 아래꺼풀이 위로 올려져 감기는 눈의 힘이 가늘었다. 삐약이는 점점 눈을 뜨고 있는 시간보다 감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엄마는 노련한 솜씨로 구급함을 열어 사람 약 분말을 조금 덜어 병아리 사료에 섞었다. 항생제이거나 감기약이었을 것의 효능이 속히 나타나기를 저녁 내내 기다렸다. 그 사이, 밤은 어두워지고 천하장사도 물리칠 수 없는 잠이 몰려왔다. 쉴 새 없이 삐약대는 병이리를 베란다에 놓은 채 식구들은 방에 들어갔다. 누구 하나 병아리를 위해 꿀잠을 포기할 용기는 없었던 것 같다. 그날 밤의 기온은 요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뜬 공간에 더 이상 삐약거리는 소리는 없었다. 밤 사이 안녕을 하고만 두 마리의 발이 눕혀진 채 허공에 굳어있었다. 잠을 못 들더라도 방에 들여다 놓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원망했다. 누구에게든 잘못을 씌워 미워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그리될걸 알았던 엄마는 빠른 동작으로 병아리 주검을 처리했다. 눈에 남아있는 노란 형상이 해를 바라보고 남은 잔상처럼 오래오래 내 눈에 머물렀다.
채널을 돌리다 동물 프로그램에 잠시 멈췄다. 자막에 나온 퀴즈를 맞혀볼 만하다고 느껴서였다.
"냉장고에 보관된 유정란을 암탉이 품어주면 부화가 될까요?"
실험진들은 냉장고에서 막 꺼낸 차갑디 차가운 유정란을 닭장에 넣어준다. 알을 보면 품으려는 본성을 타고난 암탉은 본성의 명령에 온순하게 따랐다. 품속에 숨은 거친 발이 골고루 체온을 전달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알을 굴리고 또 굴렸다. 엄마의 본성은 오로지 새끼와 생명으로 향하고 있었다. 암탉은 연유를 알지 못하는 차가운 유정란을 몇 날며칠 품었다. 자리를 벗어나지도, 게으름을 부릴 생각은 애초에 없다. 엄마의 따뜻한 품과 사랑은 과연 기적을 만들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지켜보던 화면에 알껍질을 깨고 나오는 생명이 있었다. 웅크려있던 몸을 펴는 핑크빛 병아리가 그것이다. 따뜻함이 생명을 살렸다. 어린 날, 내가 두 마리 병아리에게 주지 못한 가장 중요한 것이 떠올랐다. 온기.
살다 보면 이유 없이 굳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살도 버거워 그 틈을 단도리하듯 마음도 닫아 버린 날. 밥 먹었니? 친구의 문자가 언 마음을 순식간에 해동한다. 이제 먹어야지. 힘없게 말하며 나에게 밥을 해서 먹이는 얼굴에는 좀 전과 다른 빛이 서렸다.
등 돌린 이불속, 툭하고 와서 부딪힌 남편의 발끝이 따뜻하다. 따뜻한 발이 차가운 발에게 온도를 전이한다. 통증 같은 차가움을 끝끝내 참아준다.
생生은 따뜻함을 향한다. 그것은 친절한 안부이고, 무언의 제스처다. 그 온도가 생을 생의 길에 머물게 한다. 보일러를 켠다. 온도를 올려 생의 반대편에서 오늘도 너를, 그리고 나를 구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