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왜 벌지?

한자 철학

엄마, 역사는 왜 배워?

- 그건 역사를 돌아보며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고 앞날을 살아가는 영감을 얻기 위해서야.

엄마, 수학은 왜 배워?

- 인류 최대의 발명을 한번쯤 배워볼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사고의 패턴을 정립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 실생활에서 그 패턴과 접목한 것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어.

엄마, 돈은 왜 벌어?

- 윤택하게 살려구. 딸에게 해주고 싶은 거 해주고, 먹고 싶은 거 먹구. 그래야 좋으니까?

돈을 왜 버느냐는 질문에 다시 질문으로 얼버무리며 질문은 내면으로 향했다. 우린 돈을 왜 벌까?

중국어의 글자를 깊히 들여다보면 모호한 생각들에 대한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성찰을 얻기도 한다. 한자(漢子) 안에 담긴 요소요소가 품고 있는 철학의 고리를 엮거나 분리해 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비로소 보일 때가 있다. 고대 한학자들이 언어와 글자 안에 담아 둔 오묘하면서도 명확한 뜻을 헤아려보는 것은 예상치 못한 삶의 해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자의 대답은 이렇다.

- 잘 놀려고 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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玩(놀 완)

글자의 구조를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어 보면 王(왕) + 元(위안)이 한 글자로 만난 것을 알 수 있다. 元(위안)은 중국 화폐의 단위를 뜻하는 그 '위안' 맞다. 사전적 의미 '元(으뜸 원)' 안에 그렇게 돈의 의미가 숨어있다. 물질만능주의가 괜히 나온 게 아닌 듯하다. 돈이 으뜸인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세상을 지배하는 큰 방식과 정의가 되고 있음이 확실해 보인다. 돈이 시간이 되고, 시간은 기회가 되며, 기회는 다시 돈이 되는 구조.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 '돈'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元(위안) 왼쪽에 붙은 王(왕) 자가 예사롭지 않다. 돈과 왕이 만나 '놀다'의 뜻이 되었으니, 역으로 보면 놀기 위해선 돈의 왕이 되어야 한다. 이말은 즉, 돈은 놀기 위해 번다는 말로 귀결된다.

지난한 역병 기간 동안 돈이 있어도 무용한 봉쇄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돈이 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후 봉쇄가 완화되며 되찾은 통행의 자유는 날개 돋친 관광산업과 발걸음을 같이 했다. 그간의 답답하고 갑갑한 생활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곳곳에서 보복 소비가 일어났다.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관광지에는 휴가철마다 인산인해의 모습을 되찾아온다. 싼값에, 특가에, 여행 상품을 구입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빽빽한 인파 속에 갇혀 앞으로 가지도 뒤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상황들이 종종 매스컴에 보도되고 있다. 급작스럽게 몰린 관광객들로 인해 성수기를 맞은 숙소의 비용이 오르면서 공중화장실에서 쪽잠을 자고 길바닥에서 노숙을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노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화장실에서 자고 온 여행을 우리는 잘 놀고 왔다며 추억할 수 있을까. 대명절로 인한 숙박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관광객들이 내린 선택이다.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저렴한 방식의 여행을 선택하는 이들의 모습이 사회의 조각진 단면을 민망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날의 보도 사진에는 비슷한 나이대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시간은 있지만 돈은 없는 이들은 출발 전부터 두둑하지 못한 주머니 걱정이 앞선다. 굽이굽이 곡예 버스를 타고 다다른 절경 앞에서 찍은 사진이 여행의 목적을 다 이룬 듯 사진 속 그들이 해맑다. 그 목적은 '인증'이라고 하는 그것. 누가 요청하지도 않은 그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봤다."

"다녀왔다."

돌아와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속에, 밥은 컵라면으로, 잠은 화장실에서 때운 이야기는 입밖에 꺼내기 좀 부끄러워 그냥 관둔다.

여행으로 얻은 것이 화장실 바닥에 등을 눕힌 경험이면 참 슬프다. 안 가느니만 못한 여행을 기어이 나서는 이들의 모습도 눈물난다. 무엇을 위한 여행인가. 무엇 때문에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제대로 잘 수도 없는가.  

잘 놀기 위해 번다는 玩(완)의 속뜻에 돈이 자리하고 있음은 돈 때문에 놀기도 어려운 현실을 담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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